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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박형남의 내 인생의 책]④ 사기열전 - 사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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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역사를 만든다

경향신문

기원전 99년 한나라 태사령 사마천은 흉노에 항복한 이릉 장군이 어쩔 수 없이 투항했다고 변호하다 무제의 노여움을 사 감옥에 갇힌다. 선택지는 법에 따라 주살되거나, 많은 돈을 내고 죽음을 면하거나, 궁형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사마천은 치욕을 감수한 뒤 친구에게 말했다. “사람은 한 번 죽지만 어떤 경우는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경우는 깃털보다 가볍습니다. 이 일을 완성하지 못할 것을 애석하게 여겼기에 극형을 당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편차하던 역사서를 마무리하려고 궁형을 택했다는 말이다.

사회에 적극 참여하다 끝내 좌절한 지식인이 쓴 역사서는 과거를 다루면서 당대를 꿰뚫어 낸다. 대표적인 예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사마천의 <사기>다. 상고시대부터 한무제까지 중국사를 기술한 <사기> 중 압권은 사람의 내면과 사건을 다룬 ‘열전’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의로운 사람부터 곡학아세한 선비와 잔혹한 관리들까지…. 가장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통 큰 사람과 옹졸한 사람의 수많은 일화에서 인간과 삶의 속성, 현실 세계의 냉혹함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사기>는 권력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며 약자에 대한 동정과 정의로운 삶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곱씹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평가를 구분했고, 문학적 상상력으로 생생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당대 최고 권력자까지 엄정하게 평가했다.

<사기>에서 받은 가장 큰 교훈은 사람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가 사람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재판으로 본 세계사>를 쓸 때 이를 본받으려고 했다. 계획중인 ‘재판으로 본 대한민국’을 쓸 때도 이 가르침을 따르려고 한다.

박형남 서울고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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