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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문득 잠에서 깨니…내가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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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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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날 죽였지?"

소설의 첫 문장을 꿈에서 만나 기분 좋게 잠에서 깬 참이었다. 가브리엘 웰즈는 곧 뭔가 잘못된 걸 알게 됐다. 인파가 붐비는 거리를 가로질러 꽃가게 앞에서 멈춘 그는 꽃향기를 맡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 죽은 것이다. 죽음을 믿지 못하는 그에게 찾아온 영매 뤼시는 거울 앞으로 이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불꽃 테스트. 손에 라이터를 켜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7층 창밖으로 뛰어내리자 몸은 여전히 하늘에 떠 있었다. 그는 단 몇 초 만에 죽음의 일곱 단계를 통과했다. 충격, 부정, 분노, 타협, 슬픔, 체념,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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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죽음`으로 돌아온 베르나르 베르베르.


SF 공장처럼 부지런한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돌아왔다. 이번에 선택한 소재는 '죽음'이다. 가브리엘의 말처럼 "시대를 막론하고 죽음이 인간에게 가장 신비로운 주제인 건 사실"이니까.

2권 656쪽 분량의 새 장편에서는 반가운 소식도 만날 수 있다. '개미'의 독자들에게 친숙한 이름 에드몽 웰즈가 등장한다는 점. 에드몽의 친척 손자인 가브리엘 웰즈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마흔두 살 소설가다. 범죄학 심령술 생물학 등에 관심이 많고 장르 문학을 쓴다. 갑작스러운 죽음 뒤 그는 자신의 소설 '죽은자들' 덕분에 사자(死者)와의 대화로 먹고살 수 있게 됐다는 뤼시와 자신의 살해 현장을 방문한다.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몸에는 손바닥에 붉은 반점이 있었다. 점상 출혈은 음독의 증상. '천 살 인간'이라는 인간의 수명 연장을 다룬 소설을 탈고한 직후 그는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영매를 통해 저승에서는 좋은 조건의 환생을 제시한다. 부잣집에 형제자매와 강아지까지 있는 집에서 환생하라는 조건. 그럼에도 백조 형사 시리즈를 쓴 추리작가답게 그는 죽음의 비밀을 밝히겠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졸졸 쫓아다니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가브리엘과 뤼시는 결국 협정을 맺는다. 저승의 수사와 이승의 수사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뤼시가 독살의 범인을 찾는 걸 돕는 동안, 가브리엘은 뤼시를 감옥에 가게 만들고 사라져버린 애인의 행방을 찾기로 한다. 하늘을 날고 누구의 말도 엿들을 수 있는 가브리엘은 죽은 뒤, 유능한 탐정이 된 참이었다.

그렇게 소설은 2중의 추리 구조를 꼬아 얼개를 만든다. 가브리엘의 살인범은 누구일까. 용의자는 셋이다. ①전 애인인 여배우 ②전혀 다른 성격으로 질투심이 많았던 가브리엘의 쌍둥이 과학자 토마 ③작가의 죽음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려, 웰즈의 문체로 인공지능 로봇이 쓴 소설을 펴내겠다고 발표한 담당 편집자. 그리고 뤼시가 찾을 수 없었던 애인은 이름과 얼굴을 바꾸고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비록 죽은 몸이지만, 가브리엘은 뤼시의 매력에 빠진다. 평생 흠모한 여배우 헤디 라머를 쏙 빼닮아서다. 예의 능숙한 솜씨로 작가는 구천을 떠도는 영혼과 인간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달달한 연애 감정을 묘사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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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소설가의 장점을 어김없이 발휘하는 이 소설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게 있다. 자전적 면모가 짙다는 것. 베르베르와 마찬가지로 가브리엘은 법학을 전공하고 기자로 일하다 소설가가 됐다. 매일 아침 8시부터 12시 30분까지 카페에서 글을 쓰고, 매년 4월 1일에 신간을 내며 운동선수처럼 일하지만, 비평가들은 혹독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언론은 망자에게도 "별 볼 일 없는 작가의 죽음"이라 부고를 싣을 정도다. "비평가들에게 지지를 받거나 대중의 지지를 받거나 둘 중의 하나일세. 프랑스에서는 이 둘이 양립 불가능해. 어느 쪽을 택하겠나"라는 말은 작가가 숱하게 받은 질문이었을 것이다.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 여전히 비평가들에게는 혹평받고 있는 이 스타 작가가 책을 통해 말하는 무언의 항변 같은 소설이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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