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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미국 - 멕시코 국경은 어쩌다 死線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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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처음에는 85명이 함께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는 국경을 넘었다. 황무지와 산악에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곳곳에 멕시코 마피아와 미국 국경순찰대원, 퓨마와 독사, 절벽과 깊은 협곡이 버티고 있고 마실 물도 없다. 중간에 한 번씩 쉴 때마다 사람 숫자를 세었는데 계속 줄어들었다. 다섯 살 여자 아이가 탈진해 절명한 후 엄마도 뒤를 이었다. 도망자들에게 그 시신들을 묻어줄 시간은 없었다.

물리적으로 영토를 구분하는 국경은 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사선이 됐을까. 목숨 걸고 넘어오는 멕시코 이주자들을 단속하던 미국 국경순찰대원 프란시스코 칸투는 죽음의 행렬을 목격한 후 악몽에 시달렸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텍사스 사막 등지에서 인간의 잔혹함과 무관용에 회의를 느껴 국경순찰대를 그만뒀다.

그후 국경 근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국경의 비참한 현실을 담은 저서 '선은 장벽이 되고'를 펴냈다. 미국에서 30년이나 살아온 저자의 이민자 친구가 임종을 앞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멕시코로 가서 돌아오지 못한 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들을 평생 만나지 못하게 될 친구의 운명을 통해 다시 한 번 국경의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의 저서에선 국경은 넘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사이의 처참한 현실과 폭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경 지역은 납치, 고문, 살인, 사체 절단 및 암매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무법천지다.

그런데도 멕시코로 돌려보내도 다시 오고 결국 목숨을 잃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음식이나 물 없이 국경에서 북쪽으로 50마일 떨어진 사막에서 48시간 동안 헤매던 4명의 남자와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남자, 과달루페 성모상 앞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부부, 밀수꾼에게 버림받은 여자, 국경을 넘은 아들 소식을 묻기 위해 국경선 근처를 배회하는 어머니 사연에 울컥해진다.

멕시코로 강제 소환되기 직전의 한 남자는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단지 여기에 일거리를 찾으러 왔거든요. 마약 밀반입이나 다른 어떤 불법적인 일도 절대 한 적이 없어요. 저는 일하고 싶을 뿐입니다"고 최후의 항변을 한다.

저자는 그에게 "저도 잘 압니다"고 답하면서 마음을 짓누르는 돌덩이 같은 무게를 느낀다.

인류애를 고려하지 않은 이민제도에 회의를 느낀 저자는 국경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반(反)이민 정책으로 재선을 노리고 있다. 최근 트럼프는 대선 공약이자 대표적인 반이민 정책인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포함시킨 새 이민개혁안을 발표했다.

이 책은 국경에 대한 저자의 치열하면서도 적나라한 기록이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인위적인 선, 국경이 초래하는 폭력의 실체를 폭로하면서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도 절실한 것인지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웃과 도시, 국가, 세계 공동체나 인류애는 무엇인지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이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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