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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책과 삶]쇼스타코비치,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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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솔로몬 볼코프 엮음·김병화 옮김

온다프레스 | 656쪽 | 2만5000원

경향신문

쇼스타코비치가 스트라빈스키(1882~1971)에 대해 입을 연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작곡가”라며 “그의 작품들을 정말 좋아한다. 가장 생생하게 감명을 받은 것은 발레곡 <페트루슈카>다”라고 말한다. “<페트루슈카>를 여러 번 보았으며, 그 공연을 한 번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고 부연한다. 하지만 칭찬 일색은 아니다. 뼈 있는 말도 던진다. “예컨대 <봄의 제전> 같은 것은 덜 좋아한다. 그 곡은 상당히 조잡하고 너무 많은 외적 효과를 노리고 있어 알맹이가 없다. <불새>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이어서 프로코피예프(1891~1953)가 도마에 오른다. 스트라빈스키를 언급하는 장면에서 유지됐던 ‘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뜻밖에도 쇼스타코비치는 거친 언어로 그를 몰아붙인다. “프로코피예프는 비정한 사람이었다. 그가 (사람이나 음악 등을 평가할 때) 잘 쓰는 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재미있군’, 두 번째는 ‘알아들었어?’라는 말이었다. 이 두 용어는 내 신경을 거슬렸다. 도대체 왜 이렇게 머리가 단순한 식인종처럼 말하는 걸까? (중략) 프로코피예프는 15년 가까이 (서방과 소련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그는 스트라빈스키만 자기 라이벌로 생각했고 틈만 나면 그를 공격해댔다. 그가 나에게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저질적인 이야기를 꺼내려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의 말머리를 잘랐다. (중략) 그는 허풍쟁이였고 항상 시비조였다.”

옛 소련의 위대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 <증언>이 18년 만에 복간됐다. 미국에서 1979년 출판됐던 책이다. 한국어판은 2001년 이론과실천사에서 처음 나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절판됐던 ‘소문난 책’이다. 생애의 말년에 이른 쇼스타코비치의 구술을 음악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솔로몬 볼코프가 기록해 엮었다. 볼코프가 쓴 머리말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의 “거칠고 쇳소리 나는 테너 음성”을 연필로 받아쓰기 시작한 시점은 적어도 1968년 4월 이후이며, “정리된 회고록을 쇼스타코비치가 읽고 각 장마다 서명”한 것은 1974년 11월 이전으로 유추된다. 그렇다면 쇼스타코비치가 세상을 떠나기 약 1년 전에 원고를 마무리했다는 뜻이다. 이후 볼코프가 미국으로 망명해 뉴욕의 ‘하퍼앤로’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경향신문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회고록 <증언>에서 옛 소련의 수많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행태, 당시 일어났던 갖가지 사건들과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한다. 그는 “아무것도 덧칠하거나 거짓으로 꾸미지 않겠다. 이 글은 직접 본 사실에 대한 증언이다”라고 말했다. 온다프레스 제공


책에 기록된 쇼스타코비치의 말은 “이 글은 나 자신에 대한 회상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회상록이다”라는 문장으로 출발한다. 회고록이긴 하되 통상적인 자서전과는 맥락과 구성이 다르다는 뜻을 그렇게 밝힌다. “진실만을 말하도록 해보자.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나는 수많은 사건을 목격했고 그 사건들은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뛰어난 인물들을 여럿 알고 있었다. 그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도록 하겠다. 아무것도 덧칠하거나 거짓으로 꾸미지 않겠다. 이 글은 직접 본 사실에 대한 증언이다.”

서두에서 밝혔다시피, 쇼스타코비치는 옛 소련의 수많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행태, 당시 일어났던 갖가지 사건과 에피소드들을 언급한다. 스탈린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거니와, 반체제 지식인으로 칭송받았던 솔제니친, 그 외에도 앙드레 말로, 버나드 쇼, 로맹 롤랑 등을 위선자로 바라보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좀 더 시대를 확장해 러시아 근대 예술가들에 대한 견해가 곳곳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화가인 쿠스토디예프와 일리야 레핀, 음악가로는 러시아 근대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글린카, 또 이후의 작곡가들인 보로딘과 무소르그스키, 림스키 코르사코프, 글라주노프 등에 대한 회고가 등장한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애호를 만날 수도 있다. 그는 고골을 사랑했으며, 도스토옙스키의 비극에 대한 감각, “풍자와 비극은 한 형제”라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극작가 안톤 체호프에 대해서는 평생토록 애정을 품었다. “나는 체호프를 정말 좋아한다. 그는 고상한 주제로 이야기하기를 싫어했다. 체호프에게 위선의 냄새가 없는 점도 아주 좋다. 예를 들어 그는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여자 문제에서는 자기가 프로라고 했다. 나는 체호프를 아주 게걸스럽게 읽는다.”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던 사람들, 그가 소심하고 신중한 성품으로 스탈린 시대의 검열을 아슬아슬하게 헤쳐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해온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뜻밖의 쇼스타코비치’를 만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는 ‘미챠’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어린 시절부터 복잡한 성품을 보여줬던 것이 사실이다. 내향적이고 연약했으며, 뭔가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주변 상황을 곧잘 잊었으며, 그러다가도 금세 쾌활해지는 등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무거운 표정을 짓다가도 축구 경기를 보면서 어린아이처럼 열광하던 사람이었다. 그렇더라도 이 책에 기록된 쇼스타코비치의 언어는 유난히 날카롭고 직설적이며, 지독한 냉소의 분위기를 풍긴다.

‘순응’과 ‘항거’는 쇼스타코비치의 생애를 논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두 개의 키워드다. 옛 소련은 그를 계관음악가이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충실한 구현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 책의 출간 이후, 그를 스탈린 체제를 견뎌낸 ‘비극의 주인공’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보다 확산됐다.

번역자 김병화는 ‘옮긴이 후기’에서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 등장한, 쇼스타코비치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을 거론한다. “비극적 운명에 굴복한 불행한 음악가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 당국에 대한 비판을 계속해온 내면적 반체제 인사”라는 것이 그 하나다. 또 다른 하나는 “쇼스타코비치는 기껏해야 기회주의자, 아니면 체제 협력자”라는 주장이다. 어느 것이든 한쪽 손을 선뜻 들어주기가 쉽지 않다. 모순처럼 보이는 두 개의 단어는 그의 삶과 음악으로 들어가는 열쇳말로 여전히 남아 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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