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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시각장애인 첫 일반中 영어교사 하지만 나는 '속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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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아사 기자의 체크메이트]

시각장애인 영어 교사 김헌용씨

서울 구룡중학교 교실에서 만난 김헌용씨는 안구 축소 탓에 하얗게 변한 눈에 검은 렌즈를 착용하고 있었다. 손톱은 가지런히 깎았고 거울 보고 한 것처럼 면도도 단정히 했다. 단순한 치장은 아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의 의미가 담겼다. 그는 “장애인도 다양한 사람이 있듯이 나 같은 모습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괜스레 그들을 거북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 최항석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김헌용(33)씨는 몸을 비스듬히 돌린 채 앉았다. 눈 대신 귀가 보였다. 어릴 적 시력을 잃은 그는 대화를 위해 남들이 눈을 두는 곳에 귀를 세운다. 완전히 돌려 앉지 않은 것은 상대를 향한 그만의 배려였다.

다섯 살 때 시력을 잃기 시작한 그는 대학생 때 완전히 깜깜한 세상을 만났다.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꿈꾸는 것처럼 장면이 바뀌지 않았다. 그는 "아주 짙은 안개 속에 툭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까무러치거나 세상이 끝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장애는 어릴 적부터 그가 견뎌 온 삶의 일부였으니까. 조금 더 안 보이는 것에 유난 같은 것은 떨고 싶지 않았다.

이를 악물듯 눈을 질끈 감았다. 남들은 낮에만 책을 볼 수 있지만, 귀로 듣고 손으로 읽는 자신에겐 그 벽이 허물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것도 내 삶이구나", 받아들일수록 재미가 들렸고 낮과 밤의 경계는 엷어졌다.

그는 일반인도 어렵다는 임용고시를 통과했다. 서울에서 중증 1급 시각장애인이 일반 학교 교사가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어엿한 10년 차 영어 교사. 2015년엔 번역 전공으로 한국외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직장인 밴드의 기타리스트, 영어 통역 봉사, 강연가로도 활동한다.

세상은 그에게 아름다운 인간 스토리를 기대하거나 희망의 노래를 바란다. 가슴이 아려오고 저린 이야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는 조금 불편한 이야기를 꺼낸다. 대뜸 자신을 '속물 장애인'이라고 소개한다.

동정 아니면 무시라는 흑백논리

조선일보

수업 시간에 그가 점자책을 읽는 모습. 최항석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속물이라니.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스토리 같은 게 있다. 아픈 것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모습. 성공 스토리, 휴먼 스토리 같은 것. 나 역시 그런 목표를 갖고 살았다. 이질적이지 않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장애인 중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일반인들의 사회에 적응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삶을 갈망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장애 문화에 자부심을 갖는 사람도 있다. 나 같은 장애인은 일부다."

―당신 같은 장애인은 어떤 사람인가.

"주류에 편입되고자 노력하는 사람. 장애인치곤 일반인같이 사는 사람. 일반인과 장애인 사이에서 사는 경계인(境界人)이라고 할까. 속물이란 말을 붙이는 것도, 나 같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도 내가 장애인의 평균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장애인들은 당신을 어떻게 바라보나.

"일반인과 어울리고 그 사회 속에서 살려는 모습을 못마땅해하는 친구들도 있다. 내 경우엔 안구 수축 탓에 눈의 검은자가 하얗게 변했다. 그래서 검은 렌즈를 낀다. 잘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단 일반인들을 배려한다고 할까. 장애인도 다양한 사람이 있듯 나 같은 사람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것도 못마땅해하는 친구들도 있다. 장애인과 일반인 사이엔 넘을 수 없는 강이 있다는 얘기 같은 것. 틀린 얘기는 아니다."

―장애에 대한 자부심의 의미는.

"한 곳에 장애가 있다 보면 다른 기관이 더 발달하기도 한다. '성취'를 놓고 말한다면 일반인 입장에선 이해되지 않는 장애인만의 다른 기준이 생기는 것이다. 청각 장애인에겐 농(聾) 문화란 게 있다. 주변에도 소리를 수집하는 친구들이 있다. 내 경우 언어에 발악하듯 집착하는 것처럼 특정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 이들을 돕고 포용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관심과 도움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선(線)이 있다. 사회가 용인하는 범위를 벗어나 장애인으로서 권리 등을 요구한다면 어떨까. 굉장히 냉담한 시선이 돌아온다. 예컨대 교사로서 저의 권리나 예산이 드는 부분 등을 요구하면 껄끄러워지고 이해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도움이 아니라 동정이나 시혜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당신 같은 사람이 나올수록 그런 시선도 바뀌지 않을까.

"경계인으로 산다는 말 속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담겨 있다. 시각장애를 딛고 교사가 된 것이 화제가 되는 것처럼 여전히 장애인의 선택지는 좁다. 석사까지 마치며 공부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은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것이지 더 좋은 장애인 교사가 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갈 길이 멀다."

―장애를 가진 것을 원망하진 않나.

"시력을 잃었지만 언어를 얻었다. 시력이 있었어도 관심은 있었겠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었을까란 생각을 한다. 못 보니까 그에 대한 보상을 얻기 위해서 귀로 듣는 것에 갈증이 커지고 호기심도 생긴 것이다. 손으로 읽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수 있으니 그런 원망은 없다. 눈이 보였다면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었을까. 나는 그런 배움을 아이들에게 전하려 한다."

장애인 아닌 그냥 선생님

조선일보

김헌용씨는 좋은 장애인 교사가 아닌 좋은 교사를 꿈꾼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평가하는 교원 평가 첫머리에서 ‘장애인임에도’라는 단어가 사라졌을 때를 가장 기쁜 순간으로 꼽는다. / 최항석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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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를 만나기 위해 찾은 서울 구룡중학교에선 학생들이 김씨가 지나갈 때마다, '선생님, 저 ○○예요'라며 자기 이름을 말했다. 그럼 그도 웃으며 다시 반갑게 인사하며 학생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약속된 인사법인가.

"아이들이 나에 대해 배려를 해주는 것이다. 수업 첫 시간에 나 자신을 소개하면서 장애인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나 같은 사람을 대하는 예절이나 도움을 주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기억한다. 이름을 부르고 인사해주고 저를 도와주기도 하고. 학교에서 구룡역까지 있는 점자 보도블록은 학생들이 구청에 직접 민원을 넣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것이 교육 아닐까."

―수업 준비는 어떻게 하나.

"교과서는 점자 단말기 등을 통해 미리 대부분 외운다. 학생 자리 같은 것도 머릿속에 이미지화시켜 외워 놓는다. 다른 선생님보다 1시간 이상은 더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경쟁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통제가 잘될까. 선생님이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졸거나 떠들지는 않을까. 수업을 직접 참관해 봤다. 그는 교재를 보고 설명하는 것처럼 글과 그림을 설명하고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교재 42쪽을 보세요. 남녀가 상점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그림이 보이죠. 어떤 표현이 어울릴까요." 한 학생이 큰 소리로 대답하자 "형범이구나"라고 얘기한다. 학생들의 목소리와 좌석을 외운 덕에 떠드는 학생도 콕 집어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최성은(13)양은 "선생님이 좀 더 세심하게 설명해주신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다 아시니까 집중도 더 잘된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말을 많이 시키려 한다. 시청각 자료도 중요하지만 학생들끼리 대화하고 발표하는 것이 제일 효율적이다. 영어는 최대한 말하고 듣는 양이 느는 것이 중요하니까. 보조 교사의 도움도 크다"고 했다.

―학부모 반대는 없었나.

"초창기에 한 번 시각장애인에게 영어를 배우니 시험 점수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며 항의 전화가 온 적도 있었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항상 '내가 일반 선생님들보다 나은 것이 뭘까'를 생각한다. 조금 더 섬세하게 아이들을 대하고 가르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 같다. 학생들이 듣기만 해도 이해되게끔 쉬운 설명을 연구한다. 말보다 칠판에 적는 것이 익숙한 아이들도 있다. 파워포인트도 만들고 판서도 한다. 선생님이 갖는 관심의 정도에 비례해 아이들의 학습 능력은 향상된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가지려 한다."

―교사가 된 이유는 뭔가.

"막연히 안마사나 물리치료사, 맹학교 교사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직업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대학교 때 기회가 닿아 파견학생으로 미국에 넉 달 정도 간 적이 있다. 충격을 받았다. 미국의 장애인들은 꿈의 크기가 나보다 백 배 정도 컸다. 못 할 게 뭐냐며 각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더라. '장애인도 이렇게 살 수 있는 거구나', 나는 영어가 좋았고 알고 있는 것을 나누고 호기심을 충족해주는 일이 좋았다. 그 접점이 교단에 서는 것이었다."

매년 학기 말쯤이면 아이들에게 교원 평가를 받는다. 그는 3년 차쯤에 받았던 평가서를 잊지 못한다. "해마다 학생들 자율서술 문항 첫머리였던 '시각장애인 선생님임에도'란 문구가 그때 보이지 않더라. 학생들이 나를 장애인이 아니라 교사로서 바라봐주기 시작한 것이다. 중학교 1학년들만 가르치고 있는데, 중2, 중3,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학생들이 찾아와 감사하다는 얘기를 한다. 그런 마음들이 고맙다."

좋은 장애인, 사회인 바라는 경계인

김헌용씨는 장애인 교원 노조를 조직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가장 큰 관심사다. 경계인으로서 사는 그가 일반 사회와 크게 부딪치는 지점이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면, 또 다른 누군가와는 불편해지고 껄끄러워질 수도 있다.

"처음 교사가 됐을 때만 해도 불모지였다. 보조교사도 없고. 그런데 하다 보니까 보조교사가 생기고 교과서를 점자화해주는 제도 등이 생겼다. 이 역시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제 뒤에 따라오는 장애인 교사들은 더 개선된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 업무 배제 등도 더 적어져야 하고. 내 책무인 것 같다."

―좋은 장애인이 되려면 저항해야 하고, 좋은 사회인이 되려면 참아야 하는 구조인가.

"열심히 공부한 장애인이 고위직, 좋은 직업을 가진 것이 사회에서 회자되지만 장애인 사회에선 존경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직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유리천장을 부수는 측면이 있지만, 실제 장애인 권리 증진이나 직접적 도움을 주는 일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쪽이 환영받는 경우도 있다."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격하지 않은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두 사회를 모두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장애인이 걷기 편한 길은 임산부나 노인도 걷기 편하다. 장애인의 삶을 기본으로 보는 보편적 사고가 자리 잡으면 사회의 전체적 포용성이 높아진다. 일반인 입장에서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는 취지의 설득이 필요하다."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가 이중적인가.

"어려운 문제다. 장애인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장애인들은 그런 도움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만 장애인들의 요구가 일반인들의 이해를 침해한다고 여겨질 때 도움은 시혜가 되고 누군가가 베풀어 주는 은총 같은 것이 돼버린다. 사회의 주(主)와 객(客)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어쩌면 인간은 차라리 이분법이 편한 동물. 하지만 우리 모두 경험으로 알고 있듯, 진실은 늘 흑과 백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장애인이니 배려합시다'와 '귀찮으니 무시합시다' 사이에서, 김헌용씨는 중간 어느 지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주류 사회 편입을 꿈꾸지만, 동료의 권리 찾기에도 몸을 사리지 않겠다는 경계인.

그의 전략이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시력을 잃은 대신 언어 능력을 얻고 일반 학교에서 가르치는 영어 교사, 장애인의 복지와 사회 전체 비용 사이의 충돌을 고민하는 시각장애인의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희게 변한 눈자위를 덮은 검은 렌즈가 맑고 또렷했다. '속물 장애인'은 여전히 정면이 아니라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김아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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