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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성찰하는 보수가 나라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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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재구성

조선일보

우석훈 경제학자


식민지 알제리가 독립전쟁을 일으키자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제3 세계의 독립이라는 관점에서 조국이 아닌 알제리를 지지했다. 프랑스 국민은 배신이라며 분노했다. 보다 못한 보수 정치인 드골 대통령이 "그도 애국자다"고 한마디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얘기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잘 접목하는 나라가 잘사는 나라다. 사회적 갈등을 단순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승화시키는 방법, 쉽지는 않다.

박형준과 권기돈 공저 '보수의 재구성'(메디치 미디어)은 보수의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 '경험의 과잉과 철학의 과소'라는 저자들의 진단은, 어쩌면 한국의 모두에게 다 아픈 말인지도 모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유행어가 된 "해봐서 아는데"는 어쩌면 50대 이상 한국 엘리트, 특히 남성에게는 진실로 아픈 말인지도 모른다. 성공한 경험을 기반으로 펼치는 언술, 그걸 지금의 청년들은 단호하게 '꼰대'로 진단한다. 좀 봐주면, '아재'라고 부른다.

조선일보

보수가 재구성해야 하는 철학으로 '자유주의'를 과감하게 들고나온 것이 박형준의 책이다. 자유주의, 공화주의 그리고 법치주의 같은 공화국의 기본에 관한 얘기를 철학적으로 재정립하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교육은 뭐라고 했대? 정책적 각론으로 들어가서 조금은 실망했다. "외고는 물론이고 과학고도 폐지하자", 이 정도 나올 줄 알았지만 그보다는 약한 원론 수준의 언급만 있다. 그리고 교육개혁위원회를 만들어서 뭔가 하자는 것이 소결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식으로 각론을 구성하지 않은 것은 신선했다. 교육―젠더―외교론―국가론의 순서로 구성돼 있는데, 경제는 결국 '유능한 정부'라는 아주 하위 범주로 들어가게 된다. 이 독특한 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문을 다시 주목해야 한다. '이들 다수는 20대에서 40대까지 젊은 세대에 분포되어 있다. (…) 한마디로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성과를 자양분으로 삼아 자라난 세대이다.' 결국 책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것은 보수 담론의 재구성 정도가 아니라 보수를 지지하는, 아니 스스로 보수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 아닐까 싶다. 어떤 의미로든 이런 시도가 늘어나고,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한국이 지금의 위기를 넘어갈 수 있다.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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