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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군기반장 나선 조세영 "외교부 나사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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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차관, 통화 유출 관련 "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기강해이·범법행위"

뒤숭숭한 직원들 "靑이 상시 감찰하는 것 아니냐"…외부 약속 무기연기

주미 한국 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외부에 유출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외교부는 쑥대밭이 된 분위기다. 청와대와 여당이 '국가 기밀 유출'이라며 엄중 대응을 예고하는 상황에서 주미 대사와 외교장관 책임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24일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1차관 취임식은 시종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조세영 신임 1차관은 취임사에서 굳은 얼굴로 "지금 외교부가 처해 있는 상황은 여러분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몇 배나 더 엄중하다"고 했다. 특히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해외 공관에서 국가 기밀을 다루는 고위 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기강 해이와 범법 행위가 적발됐다"며 "국민 기대를 저버린 부끄러운 사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속하고 엄중한 문책 조치와 재발 방지 노력을 통해 하루빨리 외교부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차관 취임과 동시에 이번 통화 내용 유출 사건을 지적하면서 조직 쇄신을 위한 '군기 반장'을 자처한 것이다. 조 차관은 "외교부는 타 부처에 비해 기강과 규율이 느슨하다"며 "시대의 변화에 맞춰 우리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외교부의 미래는 없다"고도 했다. 그만큼 외교부가 처한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례 각료이사회에 참석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귀국 후 이번 사건 대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의 국장급 간부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으로 조직이 받은 충격이 상당하다"고 했다. 외교부 실·국장급 간부 상당수는 사건 파장이 확산하기 시작한 지난 23일 이후 출입 기자나 외부 인사들과 예정됐던 만남을 줄줄이 취소·연기하고 있다.

실무급 직원들도 망연자실해하는 분위기다. 한 30대 외교관은 "최근 '구겨진 태극기' 등 조직 기강 관련 사고가 잦았지만 이번 건은 정상 간 통화 유출로 청와대가 진노한 사안이라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겠다"고 했다. 현재 감찰팀은 주미 대사관의 업무 체계와 보안 시스템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대사관 직원들이 무더기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있고, 조사 결과에 따라 전체 해외 공관과 본부로 보안 감찰이 확대될 수도 있다.

외교부 내에선 "앞으로 청와대가 외교부를 '잠재적 정보 유출자' 취급하고, 상시 감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 정부 출범 후 청와대는 최소 15차례 이상, 한두 달에 한 번꼴로 외교관들에 대한 고강도 '보안 조사'를 벌였다. 휴대폰 포렌식(디지털 증거 분석)을 통해 사생활까지 들여다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다만 지금까진 정보가 유출된 직접적 증거가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

작년 말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외교부를 '정보 유출처'로 의심하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반론을 펴는 등 설전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내에선 '청와대가 우리에게만 책임을 떠넘긴다'는 불만이 쌓여왔는데, 이번 사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강 장관이 더 이상 보호막 역할을 해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본인도 책임론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조윤제 주미 대사 또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서기관급 외교관은 "앞으로 무차별 감찰이 들어와도 억울하단 말조차 못 하게 된 것 아니냐"고 했다.

[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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