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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20대 농부인데 왜 청년농부가 될 수 없나요"...'청년농부' 상표권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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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대 청년이고 농부예요. 그런데 왜 ‘청년 농부’가 될 수 없나요?"

2016년 귀농(歸農)한 이석모(28)씨는 이듬해 ‘청년 농부가 직접 농사지은 사과’라는 소개글을 달아 온라인 오픈마켓에서 사과를 팔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농촌으로 돌아와 각종 농산물을 키워 파는 ‘청년 농부’ 콘셉트의 직거래 시장이 규모를 키워갈 때였다.

그런데 최근 오픈마켓 사이트 담당자로부터 "앞으로 ‘청년 농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취지의 경고문을 받았다. 한 농촌 협동조합이 ‘청년 농부’를 상표권으로 등록해 독점적 사용 권한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픈마켓 측은 "당장 사용을 중단하지 않으면 판매 중지 처분이 떨어질 수 있다"고도 했다. 이씨는 ‘청년 농부’라는 단어를 넣어 미리 찍어둔 홍보 전단과 포장재를 전량 폐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청년 농부’라는 문구를 둘러싸고 상표권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8월 ‘청년 농부’에 대한 상표권을 취득한 ‘청년농부 협동조합’이라는 단체가 올해부터 제품명이나 소개 글에 ‘청년 농부’를 넣은 다른 단체·개인에 대해 문제제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청년농부 협동조합 측은 "정당한 상표권 행사"라고 주장하지만, 젊은 농사꾼들은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청년 농부를 상표권 등록해준 것 자체가 무효"라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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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청년농부협동조합이 조합원 모집을 공지하면서, ‘청년 농부’ 상표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밝혔다. /청년농부협동조합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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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상표권, 사용 자제하라" VS "청년 농부라는 단어 자체 독점 말도 안돼"
상표권을 가진 청년농부 협동조합은 ‘청년 농부’라는 단어를 쓰려면 조합 가입비를 내고 정당한 조합원 절차를 밟으라는 입장이다. 조합 가입비와 연회비는 각각 10만원이다. 농수산물을 팔 때 ‘청년 농부’라는 단어를 한 번이라도 사용하려면 연간 10만원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청년농부 협동조합은 작년 8월 강원도 원주에서 설립됐다.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이들이 도내 청년귀농교육 등을 통해 모여 결성했다. 이들은 최근 농산물을 판매하는 조합 홈페이지에 "‘청년 농부’는 특허청으로부터 상표 등록을 인정받은 청년농부 협동조합의 고유한 상표로, 무분별한 상표권 침해는 손해배상 소송이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 소지가 있다"며 "‘청년 농부' 상표 사용을 자제바란다"는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귀농 청년들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다. 이 단체가 청년 농부라는 단어를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6년 귀농한 ‘마카(페루산 뿌리식물) 농부’ 김도영(27)씨는 "청년 농부라는 특허권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 아니냐"며 "청년 농업인을 육성하기 위해 나라에서 지원하는 판국에 청년 농부 단어 자체를 독점해 이득을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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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의 '청년 농업인 파머스마켓'을 찾아 특산품을 맛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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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권 두고 소송戰 가나?
특허청은 ‘청년 농부’에 대해 "상표 등록이 가능하다"면서도 "‘청년 농부’라는 표현에 대한 권리 주장의 경우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양측의 손을 모두 들어주고 있다. 상표권 등록은 상표법상 거절 요건에 해당하지 않거나 절차에 문제가 없을 경우 인정된다. 반면 이 상표를 어느 범위까지 사용할 수 있고, 또 어디가지 사용을 제한할 수 있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청년 농부가 생산한 사과’라는 표현을 했을 경우 청년농부 협동조합의 브랜드로서의 ‘청년 농부’인지, 젊은 농업인이 생산한 제품이라는 의미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청년 농부’인지에 대한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 만약 후자의 경우로 해석되면 상표에 대한 권리가 미치지 않는다.

특허청 관계자는 "상표는 등록이 되더라도 단순히 제품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 등 효력이 미치지 않는 범위가 있다"며 "하지만 상표 분쟁은 특허심판소나 재판부 등 소송의 영역이고, 이 기관들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귀농한 농부들과 청년농업인 단체 등이 상표권 무효 심판·소송 등을 검토 중이다. 이상훈 한국 4H연합회 회장직무대행은 "청년농부 협동조합이 청년 농부 사용권을 제한하고 있어 현재 몇 차례 회의를 했고 상표권에 대한 무효 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소송에 나서더라도 ‘청년농부’라는 상표권을 무효화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구태언 대한특허변호사회장은 "‘청년 농부’라는 상표는 당연 무효인 상표로 보기 어렵다"라며 "상표 출원 이전에 ‘청년 농부’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모 변리사는 "소송 등의 절차에 1년여가 걸리고, 승소할 가능성도 미지수"라며 "상표권 사용에 따른 금전적 요구가 크지 않다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고 했다.

최근엔 특허청의 조치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지난 17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린 청원자는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단어를 결합한 서비스를 개인에게 독점시킬 경우 공공의 이익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문제는) 전국 청년농부들 모두에게 제재를 가하려는 협동조합의 행보와 그것을 그대로 인정해준 특허청의 수수방관 태도"라며 "특허청은 별도조치하라"고 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청년농부 협동조합 측에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수차례 상표권 논쟁과 관련한 입장을 문의했다. 조합 측은 최근 답변을 전달했지만, "답변을 기사화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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