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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4000km 돌며 지지층 결집한 황교안, 이제 목표는 중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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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간 민생 투어 마친 황교안, 매일 밤 10시 취침, 새벽3시 기상해 보고서 읽어
1999년 대정부 규탄시위 나선 이회창처럼 집토끼 잡기엔 성공
당 안팎 "관건은 외연 확장과 내년 총선 혁신 공천"

"여러분, 우리 경제가 꼴찌해 본 일 있습니까."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 집회에서 연단에 올라 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지자들이 "그런 적 없다"고 외치자 황 대표는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는 황 대표가 18일 동안 전국을 돌며 진행한 '민생투쟁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황 대표는 지난 7일 부산을 시작으로 24일까지 18일간 전국 민생 현장을 찾았다. 이 기간 전국을 4000㎞ 이상 다녔다. 잠은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에서 잤다. 황 대표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했다"고 했다. 황 대표 민생 투어를 수행했던 한 인사는 "매일 밤 10시에 잠에 들어 새벽3시에 일어나 보고서와 신문을 읽고 그날그날 메시지를 정리했다"고 했다.

황 대표는 조간신문 2개를 매일 정독하고 참모들이 올린 보고서를 읽고 서울 중앙당에 전화로 지시하는 식으로 당무도 챙겼다고 한다. 수시로 보고하느라 황 대표를 수행한 참모는 노트북에 소형 프린터까지 챙겨다녔다고 한다. 황 대표의 한 참모는 "새벽3시에 일어나 공부하는 습관은 고시생 시절부터 생긴 습관 같다"고 했다.

한국당 입당 44일만에 당대표로 선출된 황 대표는 취임과 동시에 거리로 나갔다. 대표가 된 지 35일만에 첫 선거를 치렀고, 52일째부터는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장외집회에 나섰다. 5월 들어서는 '민생투쟁 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누볐다.

오는 27일은 황 대표가 당 대표에 취임한 지 석달째 되는 날이다. 한국당에선 황 대표가 이 기간 보수 지지층 결집에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검사, 장관, 총리 출신에게 부족할 것으로 예상됐던 '야성(野性)'을 보여주며 정치 신인으로서 연착륙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과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소위 '3풍'(총풍, 세풍, 안풍) 사건으로 한나라당이 정권의 거센 공세를 받던 1999년 전국을 돌며 대정부 규탄집회를 열어 지지층을 결집했던 것처럼, 황 대표도 전국 투어를 통해 집토끼 잡기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황 대표 취임 이후 한국당의 지지율은 회복세를 넘어 어느 정도 안정선에 이르렀다는 게 당내 평가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5월 넷째주 한국당의 지지율은 24%를 기록했다. 한국당의 올해 1월 첫째주 지지율(16%)과 비교하면 8%포인트 이상 오른 것이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같은 기간 한국당 지지율은 25.7%에서 32.8%로 7.1%포인트 올랐다.

이회창 전 총재는 1999년 김대중 정권의 국정 운영 양태를 비판하는 전국 규탄집회를 통해 이듬해 열린 16대 총선에서 과반수(137석)에 4석이 모자라는 133석으로 제1당을 차지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당의 세(勢)는 이 총재 시절 한나라당보다 상대적으로 열세라는 게 한국당 의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조선일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1일 오전 인천시 중구 무의동 한 갯벌을 방문해 어민들의 일손을 돕고자 바지락을 채취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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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황 대표 측근들 사이에선 "이제 외연 확장을 고민할 때"란 말이 나온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을 감안하면 정치 스케줄상 늦어도 6월부터는 중도로 확장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황 대표 측에서 6월을 집토끼 지키기에서 외연 확장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으로 보는 이유는 계절적 요인도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4~5월은 4·3 제주항쟁이나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 노무현 전 대통령 기일이 있어 한국당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지지층을 결집하며 외부의 정치적 공격에 대한 방어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했다. 반면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어서 상대적으로 안보를 강조해온 한국당에게 유리한 시기란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당내에선 황 대표가 학계 원로 등 여론주도층 인사들을 만나 대안·수권 정당 이미지 만들기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측근은 "일각에서 황 대표에게 강연정치를 제안하는 보고도 올라갔지만 장외투쟁 이미지가 너무 강화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반대 의견도 있다"며 "수권(受權)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각계 원로들의 의견을 듣는 일정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황 대표는 우선 경제계 인사들을 먼저 접촉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계 원로들을 만나 현 정부 경제 정책의 '실정'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큰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한국당 입장에선 내년 총선을 정권 심판론으로 끌고 가야 한다"며 "국민적 심판 심리가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이 경제"라고 했다. 황 대표가 민생 투어를 돌고난 뒤 현 정권을 "무능, 무책임, 무대책 정권"으로 규정한 것도 이런 전략이 엿보인다.

황 대표가 연령대로는 20~40대, 지역적으론 수도권에서 얼마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느냐도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지역의 한 한국당 의원은 "황 대표가 민생 투어를 통해 대중 친화적 이미지를 어느 정도 만들었지만 젊은층과 수도권 유권자들의 민생 고민에 대한 비전을 내놓는데는 여전히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황 대표 측 관계자도 "대(對)정부 장외 투쟁을 통해 정통 보수 세력의 지지를 어느 정도 묶어낸 게 소득이라면, 젊은층과 수도권 유권자를 한국당으로 끌고 오는 게 숙제"라며 "황 대표가 실천적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데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한국당에선 "결국 내년 총선 공천이 황 대표의 정치적 명운을 가를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황 대표의 한 측근은 "결국 유권자는 한국당의 혁신을 사람을 통해 확인하려 할 것"이라며 "황 대표가 참신하면서도 능력 있는 인재를 얼마나 영입해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는 공천 쇄신을 이뤄내느냐에 총선 승부가 갈릴 것"이라고 했다.

[김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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