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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서울식물원의 오목한 접시 온실…온 식물이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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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신도시의 ‘보타닉 파크’ 정식개원 한달]

개구리 울던 서울 마지막 곡창지대

조경과 건축 어우러진 식물원으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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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곡창지대. 개화산·치현산·궁산 등 나지막한 산들을 동서로 끼고 한강으로 내달리는 너른 벌 마곡평야. 10여년 전만 해도 요맘때면 논에 물을 대 개구리의 합창무대가 만들어졌던 곳이 ‘보타닉 파크’로 탈바꿈했다. 지난 1일 정식 개원한 이래 22만명(19일 기준), 지난해 10월 시범개장부터 지금까지 280만명 가까운 인파가 마곡지구의 서울식물원을 찾을 만큼 인기를 모으고 있다. 서울식물원의 매력을 탐구해봤다.

■ 빛과 물을 담는 접시 온실 허파에 훅 하니 스며드는 덥고 습한 공기를 느끼며 온실에 들어서면 세계에서 가장 넓은 그늘을 드리운다는 벵골고무나무가 관람객을 맞는다. 서울식물원 온실의 주제는 ‘12개 도시 이야기’. 하노이부터 시작해 자카르타·보고타·상파울루·바르셀로나·샌프란시스코·로마·아테네·퍼스·이스탄불·케이프타운·타슈켄트 등 한강을 낀 서울처럼 큰 강 유역에서 번성한 도시 12곳을 선정했다. 도드라지게 크거나 화려한 식물이 시선을 사로잡는 게 아니라 각 도시를 대표하는 꽃과 나무를 보며 자연스럽게 동선이 이어지는 데는 식물의 배치도 중요하지만 온실의 독특한 형태 덕분이다. 그동안 익숙했던 온실 모양은 거대한 유리 돔이었지만 서울식물원 온실은 정반대로 오목한 접시 모양이다. 온실 건물 뼈대를 이루는 커다란 철골 10개가 휘어지며 중간의 코어기둥으로 모이는 형태를 띠고 있다. 온실을 설계한 건축가 김찬중(더시스템랩 대표)은 “돔 형태의 온실은 가운데 높은 곳에 대개 눈에 띄는 식물들을 배치하는데 그렇게 되면 중심과 주변이 뚜렷하게 구분된다”며 “오목한 형태를 만들면 가장자리가 더 높아져서 그 둘레에 키 높은 나무를 배치하면 더 많은 식물들을 주인공으로 대접해 관람객들이 더 풍부한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권력 분산형 온실인 셈이다.

온실은 진짜 접시처럼 빗물을 담는다. 비가 오면 경사진 천장을 타고 가운데로 흐른 물을 코어 부분에서 모아 우수 처리를 거친 뒤 조경 용수 등으로 재활용한다. 접시 온실은 빛도 담는다. 서울식물원 온실 외벽은 삼각형 유리창 3180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천장을 덮은 반투명 판은 이티에프이(ETFE·에틸렌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라는 플라스틱 신소재로 유리보다 가시광선 투과율이 20%쯤 높아 식물들이 자연광에 더 가까운 빛을 쬘 수 있고 정전기가 없어 더러움이 쉽게 씻어지는 장점이 있다. 폐광을 온실로 바꿔 지상 최대의 ‘녹색 테마파크’로 명성을 얻은 영국 콘월의 에덴 프로젝트도 이티에프이를 이용해 돔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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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의 맥락을 찾아서 전세계 이름난 도시는 저마다 빼어난 식물원을 둔 경우가 많다. 영국 런던의 큐 왕립식물원은 1759년 왕의 명령에 따라 식물학자들이 전세계를 헤매며 찾아온 식물표본으로 시작해 지금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식물 컬렉션을 갖춘 유서 깊은 장소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최근 몇년간 가장 화제를 모은 식물원 가운데 하나인 싱가포르의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16층 건물 높이의 수직정원 ‘슈퍼 트리’와 35m의 인공폭포가 있는 거대한 온실 등으로 관광객들을 압도한다.

그처럼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진 않지만 무엇보다도 서울식물원의 미덕은 ‘맥락’을 고려했다는 점이다. 마곡나루역에서 나와 식물원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호수공원의 평화로움, 한국의 야트막한 언덕처럼 굴곡이 진 주제정원의 자연스러움 등은 마곡평야의 역사, 땅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조경가 정우건(감이디자인랩 소장)의 의도에서 태어났다.

정 소장은 “마곡평야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이 가장 큰 정원사들 아니겠냐”며 “원래 땅의 경관을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기준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07년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서는 도시개발사업지구로 지정한 뒤 택지 조성을 위해 신도시 터에 2m 높이의 흙을 쏟아부었다. 정 소장은 호수공원 주변을 예전 마곡평야 레벨로 낮춰 조성하고, 미루나무 등 옛날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보던 나무를 심었다. 사실 정원의 기원을 더듬어보자면 그 시작은 잃어버린, 또는 갈 수 없는 장소에 대한 기억을 공간으로 재현하려는 노력이다. 평평하고 낮은 식물원 주변을 걸으면서 과거 물을 가득 댄 들판의 서정을 떠올릴 수 있다면 이는 강과 땅에 기대 생존했던 마곡의 과거를 되새기는 일이 될 것이다.

온실과 더불어 서울식물원의 심장부이자 유료 공간인 주제정원에도 한국 고유의 지형이 담겨 있다. 주제정원은 본초원·향기원 등을 갖춘 치유의 정원, 전통정원 양식을 취한 사색의 정원, 참억새·실새풀 등 공기의 흐름에 따라 미묘한 소리와 질감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식물들로 꾸민 바람의 정원 등 8곳으로 구획돼 있다. 주제정원은 테마별로 정원 터의 높낮이를 조금씩 달리해 변화를 줬다.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한 사색의 정원에서 내려다보면, 야트막한 구릉 사이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옛 마을의 모습과 흡사한 느낌을 받는다. 정우건 소장은 “사람이 살기 좋은 터에 마을이 들어서는 것처럼 서울식물원도 꽃과 나무들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라며 “사람과 자연의 관계 맺음을 배우는 곳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람차, 취재차 한달 동안 세번 방문한 서울식물원은 늦봄에서 초여름을 거치며 꽃과 나무가 왕성한 생명력을 뿜어내 매번 새로운 감흥을 선사했다. 자라나는 땅의 모습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핫셉수트 여왕(기원전 1598~1458)은 몰약을 만드는 발삼나무를 구하기 위해 소말리아의 아덴만으로 ‘식물원정대’를 파견했다. 뭐니 뭐니 해도 식물원의 주인공은 식물. 서울식물원 역시 원정을 통해 세계 곳곳의 진귀한 꽃과 나무를 들여왔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식물원사업부의 조상권 부장, 박웅규 차장이 서울식물원의 대표 선수들을 꼽았다.

■ 개버찌나무 강원 등 한반도 북부 높은 산에서 자란다. 나무줄기에 붉은 광택이 자르르 흘러 겨울에 독보적인 자태를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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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물병나무 저런 자세로 어떻게 서 있을 수 있나, 걱정이 될 정도다. 비가 오지 않으면 몸줄기가 뚱뚱하게 부풀어 올라 물병 모양이 된다.

■ 인도보리수 불가에선 부처가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태어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사라수(沙羅樹) 아래에서 열반에 들었다고 전한다. 서울식물원에는 부처가 생명을 얻은 나무와 깨달음의 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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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킹팜 나무가 걷는다? 햇볕을 워낙 좋아해 빛을 향해 줄기를 굽히면 새 뿌리가 나와 몸통을 지지하고 필요가 없어진 기존 뿌리는 없어진다. 어떤 워킹팜은 좋은 환경을 찾아 한해 2m까지 이동한 기록이 있지만, 서울식물원은 일광·토양 모두 우수한 조건이라 굳이 방랑을 선택할지는 미지수.

■ 바오바브나무 <어린왕자>에 나와 이름이 익숙하다. 잎은 삶아 먹고, 줄기는 전분을 내서 빵으로 만들어 먹고 뿌리는 약으로 먹어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기에 아프리카 사람들은 ‘생명의 나무’라고 부른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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