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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신웅재 사진전-삼성 반도체 피해노동자들 11년 투쟁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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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되었다고 믿는 순간 망각은 시작 된다

신웅재 사진전 <From Sand to Ash : Another Family>

경향신문

ⓒ신웅재. 가나의 수도 아크라 근교의 아그보그보로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전자 쓰레기장으로 불린다. 2017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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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되었다’. 지난 2018년 11월 23일, ‘삼성 백혈병 문제’, ‘반도체 백혈병 11년 분쟁’이라는 제목의 뉴스 헤드라인들에는 하나같이 ‘종결’이라는 수식이 마침표를 찍었다. 그날 한국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삼성전자 대표이사(김기남, 現 부회장)가 삼성전자 반도체 및 LCD 공장 피해노동자들과 유족들에게 사과문을 낭독했다. 그는 피해당사자들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사죄를 표했다. 피해자들의 울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석연치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후 분쟁의 종결을 알리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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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재. 김시녀 씨가 2013년 10월 31일 서울 강원구 춘천의 한 집에서 딸 한혜경 씨의 뺨에 키스를 하고 있다.한혜경은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전자 액정표시장치(LCD) 모듈 라인에 근무했다. 본업은 인쇄회로기판에 솔더 페이스트를 붙이는 작업이었다. 2001년 건강 상태 때문에 회사를 그만뒀고, 2005년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그녀의 의사는 종양이 그 크기로 보아 적어도 6년 이상 자란 것으로 추정했다. 뇌수술 후, 그녀는 부조화, 언어장애, 그리고 시각장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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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종결’은, 오늘 우리에게 <Another Family>를 보여주는 사진가 신웅재에게는 종결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이야기되는 순간, 사람들은 모든 것들을 망각하기 시작한다. 망각은 문제에 대한 사유와 공감, 이에서 비롯되는 행동의 변화를 소멸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똑같은 문제와 비극을 반복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문제를 일으킨 가해자는 망각을 촉진하며, 이는 가해자가 지닌 힘에 제곱 비례한다.”(작업 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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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재. 삼성전자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공장 피해자와 삼성 반대 시위대를 지원하고 돕는 단체 ‘반올림’이 2017년 3월 6일 서울 삼성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실제 반도체 공장 근로자들이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방진 덮개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반올림은 2008년부터 매년 3월 6일 희생자 추모제를 개최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피해자들은 제조 과정에서 처리한 독성 화학물질로 백혈병, 암, 뇌종양 등 중증 질환으로 숨졌다. 반올림에 따르면 전 반도체 칩 공장 근로자 112명이 306건의 신고 중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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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2007년 한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급성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삼성이 반도체 및 LCD 공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방치하고 그들이 처한 위험과 죽음을 은폐해온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이다. 2019년 2월까지 파악된 바로는 537명이 난치병에 걸렸고 그 중 171명이 사망했다. 투쟁이 이어지면서 삼성이 표방하던 ‘가족’이라는 구호는 기만의 표상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대기업 삼성만이 아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피해자들의 산업재해신청을 지속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법원은 소송을 기각했다. 언론은 모른 척 했다. 막강한 권력 앞에 끝없는 무력감과 패배감이 찾아왔지만, 피해자들과 유가족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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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재. 김기남(오른쪽) 삼성전자 부사장이 2018년 11월 23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의 사과 기자회견에서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한 직후 삼성전자 반도체 칩 공장에서 나온 독성 화학물질로 인한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씨와 악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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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재. 다발성경화증으로 인해 발작이 일어난 이소정씨(가명)의 손을 친구들이 마사지해주고 있다. 2013년 10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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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직업으로 포토저널리즘 사진을, 개인 작업으로 다큐멘터리 사진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는 신웅재는 2013년부터 그 투쟁의 현장을 쫓았다. 피해자들과의 만남을 지속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대다수가 ‘종결’이라고 믿는 2019년 오늘, 삼성전자 반도체 및 LCD 공장 피해노동자들과 가족들의 11년간의 이야기이자 고통과 죽음, 용기와 투쟁, 존엄과 불굴의 정신에 대한 사진 기록인 <Another Family>를 전시와 지면매체로 세상에 내보인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착각하며 망각이 시작된 지금이야말로, 이제까지보다 더 그 사실이 이야기 되고 기억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Another Family> 역시, 그간의 기록을 마무리 짓는 ‘종결’의 의미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이 사진들이 자각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어떤 촉매로 작동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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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재. 방카섬에서 가장 큰 주석 광산은 2016년 5월 8일 인도네시아 페말리에서 볼 수 있다. 광부들은 구덩이에서 불법적으로 일한다. 팅크는 반도체와 전자부품 제조에 필수적인 재료 중 하나이다. 방카섬은 세계 주요 주석 생산 중심지 중 하나로 전 세계 주석 생산량의 30%에 달한다. 300년 이상 동안 주석 채굴은 방카섬의 주요 산업으로, 방카 주민의 60%가 주석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치솟는 주석 수요는 수많은 불법 채굴을 불러왔고, 섬 전체가 그 결과로 심각한 환경 파괴와 인간 착취에 직면해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는 주석 산업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주석 생산과 유통에 대한 규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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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재. 인도네시아 방카섬. 20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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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재의 <Another Family>는, ‘반도체의 궤적’을 쫓고 있는 그의 작업 <From Sand to Ash> 프로젝트의 첫 번째 묶음이다. <From Sand to Ash>는 ‘모래’ 반도체의 주원료인 실리콘, 즉 규소는 이산화규소인 모래에서 얻어진다.

에서 나와 ‘재’(산업폐기물)가 되기까지, 반도체 산업의 또 다른 얼굴 즉 환경파괴와 오염, 자원고갈, 노동착취, 아동노동문제 등 인류 문명에 쏟아내는 폐해들을 르포르타주(Reportage) 방식으로 담아내는 작업이다. 섬 전체가 주석이 풍부해 수백 년간 전 세계 주석의 공급원이었으나 현재는 토양파괴를 넘어 인근해역의 생태계까지 재앙에 가까운 환경문제에 직면한 인도네시아 방카 섬에 관한 르포르타주가 ‘모래’의 일부라면, 아프리카 각지와 유럽국가의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가나의 수도 아크라 슬럼 지대 사람들의 전자제품 분해 및 소각 현장은 ‘재’에 해당한다. 서울과 뉴욕 등 반도체가 최첨단 기기로 소비되는 대도시의 모습들도 포착했다. 반도체칩이 생산되고 소비되고 폐기되는 전 과정에 걸쳐 일반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명백히 존재하고 발생하는 폐해들을 사진의 힘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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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재. 가나의 수도 아크라 근교의 아그보그보로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전자 쓰레기장으로 불린다. 2017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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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세계 여러 지역을 하나의 ‘현장’으로 넘나들고 있는 젊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성큼한 행보를 볼 수 있는 신웅재 사진전 <From Sand to Ash : Another Family>는, 오는 5월 21일부터 6월 2일까지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린다. /글·사진 갤러리 류가헌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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