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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문장론 펴낸 ‘盧의 필사’… “말에 가까워야 좋은 글”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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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 펴낸 윤태영 前 연설비서관 / 민주화 투쟁으로 아내와 옥살이 / 편지 주고받으며 글 실력 향상 / 번역하면서 글쓰기 많이 늘어 / 직역 후 매끄럽게… 문장력 도움 / 노무현 첫 자서전 맡으며 인연 / 文 대선 슬로건·취임사 등 맡아 / 담담한 시선으로 盧평전 집필중

세계일보

논·밭 넘어 일산 아파트 숲이 보이는 한적한 촌에 자리 잡은 작가 윤태영의 집필실은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 속 작은 집을 연상시켰다. 지은 지 60여년 된 집을 사들여 지난해 가을 손보고 겨울부터 집필실로 써 왔다고 한다. 지난 20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윤태영은 “차로 15분쯤 걸리는 집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산책을 한 후 아침을 먹고 집필실로 온다. 처음 생긴 집필실인데 출·퇴근 개념으로 나오니까 일을 강제로 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 와선 TV를 본 적도 없고, 옆방에 침대가 있긴 한데 누워본 적도 거의 없어요. (서울에서)저녁 약속이 있으면 네다섯시에 일을 접고, 일이 잘되면 아홉시쯤까지 글을 씁니다. 저 부엌에 쌀·반찬도 있고 간편식도 있어요.”

작가 윤태영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 홍보팀장을 거쳐 청와대 대변인, 제1부속실장, 연설담당비서관 등을 역임한 ‘노무현의 필사(筆士)’. 또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지향하는 가치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명 구호로 압축하고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으로 공감을 얻은 문 대통령 취임사를 작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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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필사’ 윤태영이 지난 20일 고양 집필실에서 “말과 글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최대한 말에 가까운 글이 좋은 글”이라며 자신의 문장론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담은 ‘기록’과 ‘대통령의 말하기’ 등 여러 권을 책을 냈는데 이번엔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을 펴냈다. 2014년 말 펴낸 ‘글쓰기 노트’에 이은 두 번째 글쓰기 책이다.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어떤 이에게 세상은 불편하다. 한 글자 쓰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몇 자라도 써야 하는 일이 자꾸 생긴다. SNS로 소통하는 시대가 열리면서부터는 더욱 그렇다.” 윤태영이 문장론 서문에 밝힌 글을 잘 써야 하는 이유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문학청년을 꿈꾸던 윤태영의 삶을 흔든 첫 번째 글은 대학 3학년 때인 1981년 5월 작성한 유인물이다. 전두환 대통령 취임 무렵에 ‘민주학우투쟁선언’으로 연세대 교내에 뿌려진 글을 쓴 결과 징역 8개월을 살게 됐다. 이때 여자친구로 사귀었던 아내 역시 교내 시위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먼저 출소한 윤태영은 여자친구 옥바라지 삼아 “있는 사실, 없는 얘기를 모두 끌어모아 편지를 썼다”고 한다. 덕분에 글솜씨가 엄청 향상됐다고 한다. “지금도 당시 연애편지가 남아있느냐”는 물음에 “아내가 잘 간직하고 있는데 절대 꺼내보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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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영 삶의 중요한 만남의 계기가 된 두 번째 글쓰기는 1994년 발간된 노무현 대통령의 첫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 노 대통령이 구술한 내용을 윤태영이 정리, 편집했다. 이 때 인연이 훗날 노무현의 필사가 되는 계기다. 윤태영은 “노 대통령과 함께 글 쓰는 일은 힘든 작업이었다. 자신의 글에 대해 무척 까다로운 편이셨다. 철저히 여쭤 뜻이 제대로 담기도록 써야 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을 글을 더 잘 쓰고 싶어하는, 말잘하는 사람으로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명연설로 평가받는 2006년 4월 ‘최근 한일관계에 대한 대통령 특별담화(독도 연설)’와 같은 글은 노 대통령이 직접 쓴 글이다.

지난 23일 봉하마을에서 거행된 노무현 대통령 10주기 추모식을 맞아 노무현재단이 내건 ‘새로운 노무현’이라는 구호도 그의 작품이다. 윤태영은 “강연을 다니면 ‘새로운 노무현’이 자라고 있다는 걸 많이 느낀다. 제가 제일 힘들어한 건 노 대통령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노 대통령 발언과 행적을 내놓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새로운 세대는 선입견 없이 노 대통령을 느끼더라.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노 대통령 얘기를 하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이 든 분들은 ‘왜 말을 험하게 했느냐’, ‘왜 언론과 싸웠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젊은 세대는 그런데서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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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재단측도 10주기에 즈음해 추모에 집중하는 데서 새로운 시민을 키우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공감대가 있어서 윤태영이 제안한 ‘새로운 노무현’이 구호로 채택됐다. 아팠던 한 해만 빼곤 매년 노 대통령 추모식에 참가했던 윤태영은 25일 통화에서 “2009년과 문 대통령이 참석했던 2017년에 이어 이번에도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봉하마을에 왔다. 전날 제사에도 기초단체장이 여럿 참석했다”며 “내년부터 더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보자는 얘기도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윤태영이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과업은 노무현 대통령 평전이다. 노 대통령 서거 다음해인 유시민 집필의 사후 자서전 형태로 노무현재단이 펴낸 ‘운명이다’와 달리 3인칭 정본 형태의 전기(傳記)다. 지난해 겨울부터 매일 A4용지로 10여장씩 집필해 현재 2500여매 분량까지 작성했다. 그는 “수족처럼 일한 사람이 평전을 쓰는 게 맞는지 생각도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께서 생전에 ‘말한 것, 보고들은 대로만 쓰면 된다’고 하셨다. 그런 원칙에 맞게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쓰면 평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무현평전 출간 계획은 일단 연말까지 탈고할 계획인데 한층 어려운 시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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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부닥쳤다. 이제부터 취재도 더하고 예민한 문제도 알아보며 한 단계 전진해야 한다. 어린 시절도 다시 짚어야 되고, 2007남북정상회담도 여러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 등장인물이 지금 다 현직 정치인이어서 예민한 문제도 많다.”

고양=글, 사진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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