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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여적]영혼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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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열린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영화 <미쓰백>이 여자최우수연기상(한지민), 신인감독상(이지원), 여자조연상(권소현) 등 3관왕에 올랐다. 이지원 감독은 “영화의 미약한 불씨를 살려준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특별히 관객을 호명한 데는 사연이 있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미쓰백>은 스크린을 충분히 잡지 못했다. 아동학대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룬 데다, 감독이 신인 여성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개봉 이후 여성 관객을 중심으로 호평이 늘며 스크린 수가 역주행했다. ‘쓰백러’로 불린 열혈 관객층은 ‘N차 관람’(다회차 관람)에 나섰다. 아동학대 장면을 보는 일이 고통스러운 이들은 ‘영혼 보내기’로 대신했다. 영혼 보내기란, 영화를 지지하지만 사정상 관람이 어려울 경우 표를 사서 영혼이라도 극장에 보낸다는 뜻이다. <미쓰백>은 총 관객 수 72만여명으로 손익분기점(70만명)을 넘겼다.

최근 <걸캅스>가 개봉하며 ‘영혼 보내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여성 경찰이 디지털 성범죄를 추적하는 내용에 공감한 여성 관객들이 N차 관람에 ‘영혼’까지 보태고 있어서다. 걸캅스는 개봉 전 일부 남초(男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격받고, 포털사이트에선 평점 테러도 당했다. 하지만 개봉 후엔 여성들의 응원에 힘입어 순항하고 있다. 누적 관객 147만여명(25일 현재)으로 손익분기점 150만명(순제작비 기준)에 거의 도달했다.

영혼 보내기를 두고 ‘사재기’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사재기란 이윤을 목적으로 대량 매집하는 행위다. 흥행으로 돈 버는 ‘관계자’가 아닌 ‘관객’이 지갑을 여는 일은 해당하지 않는다. 문화 다양성을 위한 주체적 소비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의 실사 한국영화 39편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10편에 불과했다. 벡델 테스트는 1985년 미국에서 고안된, 영화 속 성평등 측정 지수다. △이름을 가진 여성 인물이 2명 이상 등장하는지 △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지 △이들이 남성과 관련 없는 대화도 하는지 등 3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34년이 흘렀는데 테스트를 통과하는 영화가 네 편 중 한 편꼴이라니. 영혼을 보낼 만도 하지 않나.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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