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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나이 들면 누구나 아파… 약자 돕는 건 미래의 '나' 돕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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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스님… 조계종 사회복지 분야의 선구자

'밥 한번 안 사는 짠 스님'이지만 노인·중증장애인 270명 돌보고 30년 동안 기부 금액만 30억원

조선일보

"정년퇴임 기념법회에 오시는 손님들을 빈손으로 보내드리기 뭐해서 법문집을 냈어요. 원래 제가 생각한 제목은 '밥값'이었습니다. '시주 은혜 안 잊고 밥값 하자'는 게 제 신조였습니다."

조계종의 첫 사회복지학 전공자이자 사회복지 분야 선구자인 보각(65) 스님이 오는 8월 말 중앙승가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한다. 그가 말한 법문집은 '눈물만 보태어도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불광출판사).

전남 나주 출신으로 고교 졸업 후 해남 대흥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그는 1974년 상지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1985년부터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가 처음 사회복지학을 전공한다고 했을 때 "거지에게 빵 나눠주는 걸 뭐 하러 배우느냐"던 불교계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 올해부터는 전국 승가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은 필수 과목이 됐다. 지금까지 길러낸 제자가 1000여 명, 전국의 불교 사회복지시설 대표의 절반 이상이 그의 제자다.

현장에도 뛰어들었다. 한때 물의를 빚은 소쩍새마을을 인수해 정상화시켰고, 2004년부터는 경기 화성의 사회복지법인 자제공덕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노인요양시설(묘희원·상락원)과 중증장애인 시설(불이원) 등에서 270여 명을 돌보고 있다.

28일 만난 스님은 "인연 따라 살아왔다"고 했다. 사회복지의 씨앗은 어린 시절 이미 뿌려져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빨간 내복' 이야기를 들려줬다. 광주의 중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시험 치러 가던 날. 어머니는 춥다며 당신의 빨간 내복 상의를 아들에게 입혔다. 버스를 타고 가던 중 거지 모녀가 버스에 올랐다. 갑자기 어머니는 "얼른 내복 벗어라" 했다. 당황했지만 순종했고 빨간 내복을 거지 여성에게 줬다. 박수가 터져나왔고 승객들은 모두 "착하다"며 "시험 꼭 붙을 거다"라며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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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스님이 자제공덕회 노인요양시설에서 노 비구니 스님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건 성직자의 의무”라며 “이주민과 치매 전문 시설도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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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많은 것도 어머니를 닮았다. 그는 "운전하다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연을 듣고 목이 막히도록 눈물이 나서 혼난 적도 있다"며 "요즘 말로는 '공감 능력'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제자 스님들에게 "남의 불행과 고통을 보면서 눈물 한 방울 부조하고 보시할 줄 모른다면 수행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가르쳤다.

그는 "우리 모두는 예비 장애인"이라고 했다. "누구나 나이 들면 눈, 귀, 다리, 기억력 다 나빠지지요. 모두가 장애로 가는 과정에 있고, 내 미래는 장애와 연결돼 있습니다. 그걸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요. 장애인을 돕는 건 미래의 나를 돕는 것입니다."

그는 주변에 '밥 한번 안 사는 짠 스님'으로 유명하지만 30년 동안 기부한 금액만 30억원에 이른다. 법문 잘하는 스님으로 유명해 어느 해 부처님오신날엔 퀵 오토바이를 타고 옮겨다니며 하루에 7번 법문한 적도 있다. 법문 사례금과 교수 월급, 원고료를 모두 저축해 보시한 것. 퇴임 후 꿈도 '매월 400만~500만원쯤 기부하는 것'이다.

그는 "부처님이 지금 세상에 오신다면 사회복지사가 되셨을 것"이라고 했다. "부처님이 깨달은 후 혼자 계셨다면 불교라는 종교가 생겼을까요? 저는 '평생 참선 수행만 열심히 하겠다'는 후배 스님을 보면 묻습니다. '그럼 밥값은 언제 할래?' 깨달음은 나눴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자비가 입과 머리에만 머무르면 '무자비'입니다.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합니다."

스님은 작년 9월부터 강진 백련사 주지를 맡고 있다. 주지 부임 후 식당에서 '스님석'부터 없앴다고 한다. 그는 "대접받지 않으려 애쓴다"고 했다.





[화성=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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