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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연재] 조선일보 '민학수의 All That Golf'

[민학수의 All That Golf]US오픈 트로피 든 이정은의 눈물...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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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장애인 차 타고 다니며 어렵게 골프… 100kg 역기 들고 스쿼트 하며 만든 기적

조선일보

이정은이 3일 US여자오픈 시상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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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여자골프 최고 권위의 대회인 US여자오픈 트로피를 양손에 든 이정은(23)이 시상식 인터뷰 도중 감정이 북받친 듯 울음을 터뜨렸다.

사회자가 "이 대회 우승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느냐"고 묻자, 이정은은 "지금까지 우승한 어떤 대회와도 느낌이 다르다. 이제까지 골프를 한게 생각이 나서…"라는 말을 하다 갑자기 흐느꼈다. 이를 영어로 통역하던 매니저마저 눈물을 터뜨렸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현장에 있던 외국 관계자들은 짐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정은은 지난해 8라운드 144홀에 걸친 ‘지옥의 레이스’였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퀄리파잉 테스트를 수석으로 통과하고도 한동안 미국 진출을 망설였다.

‘효녀 골퍼’라 불리는 그는 정말 어렵게 골프를 했다.

아버지 이정호씨는 딸이 4세 때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이정은은 아버지가 운전하는 장애인용 자동차를 타고 국내 투어 생활을 했다. 골프장에서는 이정은이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어주곤 했다.
순천 출신인 이정은은 어릴 적 잠시 골프를 배우다 형편이 안돼 중단한 적이 있다. 고교에 들어가 "순천에는 여성 티칭 프로가 없으니 세미프로가 되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을 것"이란 생각으로 다시 골프를 시작했다. 여자 선수로는 드물게 100kg짜리 역기를 메고 스쿼트를 할 정도로 독하게 했다. "어릴 때 집안이 어려워 도움을 주신 분이 많다. 그분들도 여유가 없었는데 나를 도와주셨다. 나도 그분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운동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지 2년 만인 2015년 국가대표가 됐다. 그 해 가을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을 땄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출전권을 따냈다. 2016년 KLPGA 투어 신인왕에 이어 2017년 상금왕, 최저타수상, 대상 등 전관왕에 올랐다. 이정은은 지난해 3관왕에 오르고 "실력 점검이나 해본다"는 생각으로 치른 LPGA 투어 Q테스트를 수석으로 합격했다.

하지만 이정은은 "아버지 몸이 불편하시고 엄마 건강도 아주 좋은 것은 아니어서 걱정된다. 부모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래도 자식 입장에서 걱정이 된다"며 한동안 미국 진출 꿈을 접을 생각을 했다.

주변의 계속된 권유에 마음을 바꾼 이정은은 "LPGA투어 첫해 목표는 신인상이다. 한국 선수의 5연속 신인왕 획득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부모님 곁을 떠나 LPGA 무대로 향했다.

새로운 생활은 이정은에게 색다른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주변의 기대나 과도한 부담에서 해방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얼마전 한국 투어에 왔던 이정은은 미국 생활이 어떠냐고 묻자, "골프를 시작하고나서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대회를 치른다"고 했다.

"그동안 부담을 많이 느끼면서 생활해왔다. 여기선 주변에 날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매니저와 둘이서 경기를 할 때가 많다. 골프의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머리 색깔도 바꿔보았다.

이정은은 LPGA투어에서 ‘이정은6’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KLPGA투어에선 이정은이라는 이름을 쓰는 동명이인이 많아 등록 순서대로 번호를 붙이다 보니 이정은 6가 됐다. 그는 "식스라는 번호가 특이하고 내 브랜드가 된 것 같다. 행운의 6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팬클럽 이름도 ‘럭키 식스’다.

착하면서도 독한 효녀 이정은의 ‘럭키 식스’ 시대가 미국에서도 막을 올렸다.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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