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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헝가리의 찬란한 여름, 가족들만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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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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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브 어 굿 트립 인 부다페스트!”(부다페스트에서 즐거운 여행하길!)

지난 5월30일 카타르 도하를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카타르 항공기 안, 미소 띤 승무원이 복도를 오가며 인사를 건넸다. 승객들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헤드폰을 낀 채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기내식 메뉴를 뒤적였다. 한껏 들뜬 여행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한 표정으로 비행기 바닥만 내려보거나, 옆에 앉은 이를 꼭 끌어안고 서로를 토닥이는 이들도 있었다. 헝가리 유람선 사고 뒤 사고 현장으로 향하던 피해자들의 가족 10여명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 6월의 여름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성수기다. 하루 전인 29일 다뉴브강 유람선 허블레아니호에 타고 있던 이들도 그 찬란한 여름을 만끽하려 이곳을 찾았고, 여행 필수코스라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기 위해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이들을 삼킨 사고 현장은 김애란의 소설 제목처럼 ‘바깥은 여름’이었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스노우볼 안에 갇힌 존재와도 같았다. 볼 바깥에선 사람들이 따뜻한 햇볕과 선선한 바람을 만끽했지만, 투명한 구 모양의 볼 안에선 하얗고 시린 눈이 내렸다. 바깥은 여름인데 안은 겨울. 여행객들은 반짝이는 강물을 배경으로 사랑을 속삭이며 추억으로 남길 사진을 찍었지만, 가족들은 다리 아래 그늘에서 가족들을 떠올리며 흐느꼈다. 누군가에게 평화로이 물수제비를 뜨는 강물은, 며칠 전 28명을 집어삼킨 늪이기도 했다.

실종자 이아무개(28)씨의 아버지는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비싼 호텔 중 한곳에 묵고 있었다. 여행사가 마련해준 숙소였다. 반짝이는 샹들리에가 달린 멋진 호텔 로비에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파리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죽었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오열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새끼가 물 안에 ‘있다’고 했다. “내 새끼가 저 안에 있으니까… 인양을 해서 빨리 보면 좋겠죠.”

브리핑에선 정부 관계자가 피해자 가족들을 두고 ‘유족’이라고 표현했다가 서둘러 ‘가족’으로 고쳐잡았다. 실종자 수색을 두고 ‘주검을 찾는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도 현장의 암묵적 약속이다. 여름으로부터 소외돼 겨울에 유폐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였다.

가족들을 한겨울로 밀어붙이는 이들도 있었다.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장이 언론 브리핑에서 가족들이 머무는 호텔을 공개하자, 취재진은 우르르 호텔로 달려갔다. 그 안에는 기자도 있었다. 서로 “취재 좀 하셨어요?” 물으며 눈치를 살피던 기자들은, 로비로 가족들이 하나둘씩 나오자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그 자체로 사람에 대한 예를 잃고 있었다. 기자들이 던진 질문에 한 남성은 눈만 껌뻑이며 기자들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 말 없는데요….”

또 다른 여성은 소파에 턱을 괸 채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뭘 물어보고 싶은데요?”

순간 머리가, 온몸이 굳었다. 우리는 과연 뭘 묻고 싶었던 걸까.

이번엔 가족들이 부다페스트 한 대학병원 시신안치소를 찾아 주검을 확인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취재진은 또다시 달려갔다. 그중 한 기자는 사망자 가족인 척 위장해 시신안치소에 접근했다고, 신속대응팀장은 전했다. 취재진 사이에서는 “그 매체가 어디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대부분 기자 얼굴에는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는 안도가 묻어났다. 가족들은 심리상담에서 ‘개인정보 유출과 언론의 과도한 취재’를 트라우마의 주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선체가 인양되고 수습되는 주검이 한구씩 늘어날 때마다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조만간 취재진과 정부 쪽 인사들도 7시간 시차를 넘어 하나둘씩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여름 한가운데서 겨울을 보내는 이들’에 관한 기억도 빠르게 지워질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 일부는 여전히 부다페스트 머르기트 다리를 서성이고 있을테다. 볼 바깥은 완연한 여름이지만, 여전히 볼 안에서 하얀 눈을 맞고 있는 이들. 가족들과 바깥 세계를 갈라놓은 ‘계절의 벽’은 과연 좁혀질 수 있을까.

한겨레

부다페스트/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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