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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車 타면 떨던 아내, 스르르 잠들었다[체헐리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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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지난해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뭐든 직접 해봐야 안다며, 공감(共感)으로 서로를 잇겠다며 시작한 기획 기사입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자식 같은 기사들이 나갔습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땐 설레기도 했고, 소외된 이에게 200여통이 넘는 메일이 쏟아질 땐 울었습니다. 여전히 숙제도 많습니다. 그래서 차마 못 다한 이야기들을 풀고자 합니다. 한 주는 '체헐리즘' 기사로, 또 다른 한 주는 '뒷이야기'로 찾아갑니다. 

[운전습관 다시 들인지 3주, '운전대' 앞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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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늘어난 흰 티를 입고 운전하고 있는 기자. 머리가 떡져서 블러 처리했는데, 그래도 티가 좀 나는 것 같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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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기 싫다던 아내가 조용해졌다. 모처럼 평일 휴일이라, 회사까지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정지선에 멈춘 뒤 숨죽여 조수석을 바라봤다. 고개가 살짝 기울어진 모습, 그리 스르르 잠들어 있었다. 혹여 깰까 싶어, 조용히 흐르던 피아노 음악을 고요히 낮췄다. 초록불로 바뀐 뒤엔 가속 페달을 살며시 밟았다. 차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오른편에서 검은색 차량 한 대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속도를 안 내던 터라, 비교적 여유 있게 멈췄다. 그리고 다시 조수석을 바라봤다. 다행히 아내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여기까지 보면, 꽤 매너 있는 운전자(者)인척. 하지만 전혀 아녔다. 평소 내가 운전대를 잡을 때, 아내는 늘 조수석 위쪽 손잡이를 붙들었었다. 주로 내게 하던(지르던) 말은, "속도 좀 줄여", "천천히 좀 가", "급정거 좀 하지마", "멀미날 것 같아" 등이었다. "알았어"하고 늘 대답은 잘했지만, 맘처럼 잘 안됐다. 대뇌가 마비된 듯, 자율주행차에 앉은 듯, 머리와 손·발이 따로 놀았다. 이상하게 운전석에만 앉으면 조급하고, 불안하고, 빨리 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꿀단지 숨겨 놓은 것도 아니면서. 습관이 언제부터 망가졌는지도 모른채, 위험한 주행을 이어갔었다.

출근길, 우연히 사고를 본 게 참 다행이었다. 차량 운전자가 내 모습으로 오버랩 됐고, 짧은 순간에 서른 일곱 해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제든, 우연히, 내 얘기가 될 수 있었다. 아직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그리 비참한 결말은 맞기 싫었다. 그래서 습관을 다시 들여야겠다 맘 먹었었다. 소설 구운몽(九雲夢) 주인공이 꿈꾼 뒤, 깨달음을 얻듯.

그렇게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3주가 지났다. 습관은 하루 아침에 바뀌진 않았다. 운전대를 1시간 잡으면, 열 몇 번씩 맘이 요동쳤다. '달리고 싶다', '밟고 싶다', '답답하다'며 생각을 되뇌었다. 뒤에서 빵빵 거리는 차들에 조바심이 났다. '정속 주행' 인데도 내가 느린 것처럼 느껴졌다. '교통 흐름에 맞게 달려야 해" 하며 속도 위반하는 차들을 쫓아, 자기합리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달릴 때 클락션 소리를 안 듣기도 했었다. 내가 맞는 건지, 틀린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렇게 사리가 나올 것 같은 고뇌의 일주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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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장면을 보면 긴장이 된다. 차량 속 운전자가 나일 수 있다는 생각에./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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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에 들어서니, 비로소 마음이 좀 가라 앉았다. 정속 주행은 할 수 있게 됐고, 정지선을 넘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급출발과 급정거는 반복했다. 3주차에 들어서니, 돌발 상황에도 차분히 대처할 수 있게 됐다. '방어 운전'이 편해졌단 뜻이다. 급하게 튀어 나오던 아이, 자전거, 오토바이 등을 봐도 당황하지 않고 속도를 줄일 수 있었다. 시야가 좁은 야간엔 불안할 때가 더 많았는데, 밤에도 괜찮았다. 그렇게 운전대가 서서히 편해졌다. 훨씬 여유가 생겼고, 웃는 시간도 늘었다.

시속 80킬로미터에 달려야 하던 도로를, 100킬로미터, 필요에 따라 120킬로미터씩 밟던 시간들이 있었다. 속 시원히 달리는 거라며 우쭐 했었다. 그게 잘하는 건줄 알았다. 뼛 속 깊이 반성한다. 습관을 들이며 예전에 운전했을 때와 시간 비교도 해봤다. 기껏해야 6~7분 정도. 이를 위해 목숨을 걸었었다. 자칫하다간 형체도 남지 않을만큼 몸이 부서졌을 것이다. 나만 죽으면 차라리 다행이다. 함께 사고를 당할, 상대방 차량은 무슨 죄일까. 그런 맘이 들 때면, 거북이 운전을 자처한 스스로가 대견해진다. 너무 늦진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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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앞쪽에 붙인 가족사진들. 천천히 가도 괜찮다, 함께 오래 살고 싶다. 벽에 응아칠 할 때꺼정./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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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에 가려 간과하는 것들이 있다. 내가 늘상 마주하는 건 차디찬 철덩어리지만, 그 안에 타고 있는 건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란 것. 그런 맘에서, 사랑하는 아내 사진을 여전히 붙이고 다닌다. 테이프가 너덜거려 한 번 떨어졌길래, 단단하게 다시 붙였다. 아내가 웃으며 "이게 효과가 있냐"고 얼마 전 물었었다. 그냥 운전이나 정신 차리고 하라며.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같이 오래 살고 싶으니까, 정말 효과가 있다"고(오글 죄송).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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