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8 (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가'…사법농단 재판 '헛바퀴' 이유는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위법수집 증거, 공소장 일본주의, 재판부 기피신청….

현직 때 문제삼지 않다 피고인 돼 태도 돌변

재판 지연 '꼼수' 의심, 고위 법관 출신 반성이 우선

이데일리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위법수집 증거, 공소장 일본주의, 위헌법률심판,재판부 기피신청….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고위 법관들 재판 진행에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임종헌(61·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1심 구속기간인 6개월을 넘기고도 심리 종결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고, 양승태(71·2기) 전 대법원장도 구속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이제 3차 공판에 들어섰을 뿐이다.

법조계에서는 각종 법률지식을 드러내며 재판을 장기화하는 양 전 원장 등을 향해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유해용, 위헌법률심판 신청 기각…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곳곳서 잡음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재판장 박남천)는 최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유해용(53·19기) 변호사가 형사소송법 규정에 대해 낸 위헌법률 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유 변호사 측은 지난 4월 1일 형사소송법 제200조와 제312조에 대해 헌법에 어긋난다며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해 달라고 재판부에 신청했다. 형사소송법 200조와 312조는 각각 검찰의 출석요구권과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 인정에 대한 것을 규정하고 있다.

유 변호사의 재판은 위헌법률 심판제정 신청에 따라 2주간 공전됐다.

임 전 차장의 경우 ‘피고인의 방어권 침해’를 이유로 이미 두 차례나 재판이 열리지 못했다. 지난 1월 29일 첫 공판을 앞두고 “현 상태의 재판 진행으로는 피고인의 방어권과 변호인의 변론권 보장이 어렵다”며 변호인 11명이 전원 사임한 바 있다. 담당 재판부가 주 4회 재판을 예고하면서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 일로 임 전 차장의 첫 공판이 40일이나 연기면서 재판부도 한 발 물러섰다. 애초 주 4회를 예고했지만, 횟수를 줄여 주 2~3회 재판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임 전 차장은 지난 3일 또 다시 재판 횟수를 문제 삼으며 “어떻게든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 내지 투철한 사명감에 가까운 강한 예단을 갖고 극히 부당하게 진행을 해왔다”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했다. 임 전 차장의 재판은 또다시 중단된 상태다.



◇“고위 법관들의 반성 없는 문제제기…사법부 신뢰 훼손 야기”

법조계에서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고위 법관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재판 지연을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전직 고위 법관 출신인 피고인들이 ‘깨알 법률지식’으로 사실상 재판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김지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장은 “피고인의 입장에서 느꼈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본인들도 이런 문제점에도 재판을 해왔다는 측면에서 반성이 선행돼는 게 순서”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성 없이 본인들이 피고인이 돼 느끼는 문제점만을 지적한다면 이는 사법부 신뢰 훼손으로 직결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재판 진행이 사실 정치적으로 흐르고 있는 측면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며 “하나의 공소사실로 묶여 있는 양 전 원장 등이 재판 진행을 같이 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직 고위 법관들의 이런 지적이 차후 형사재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서초동의 또 다른 변호사는 “위법수집 증거나, 공소장 일본주의는 변호사 업계에서도 지적돼 왔던 사례였다”며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에서 이런 문제점들이 세밀하게 지적이 돼 선고까지 이어진다면 결국 하나의 판례로 정립돼 형사재판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