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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지하철에 4300명 타는데 방독면 180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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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독면 24명당 1개… 불안한 지하철역 / 홍대입구·잠실·신림역도 200개 /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부터 비치 / 관련규정 없고 구비 의무화 안돼 / “최대 탑승객 수 3분의 1이상 필요…구호품 비치 매뉴얼 마련 시급”

세계일보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유독가스를 막아줄 ‘화재용 마스크’(방독면)가 이용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독면은 지하철 내 화재 발생 시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핵심 구호장비인데도 법적으로 의무 비치 품목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9일 세계일보가 서울 지하철역 중 지난 1∼4월 기준 이용객 수가 가장 많았던 강남역(14만3768명)을 확인한 결과 화재 대비 구호용품 보관함은 총 6개였고, 방독면은 보관함마다 30여개씩 총 180여개가 구비돼 있었다. 지하철 10량 기준 최대 탑승 인원 4320명을 기준으로 하면 강남 지하철역에서 24명 중 1명꼴로 방독면을 착용할 수 있는 셈이다.

강남역 외에 이용객 수가 많은 다른 역도 사정은 대동소이했다. 서울교통공사 등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일평균 이용객 수 2~4위를 차지한 홍대입구역(12만9193명)과 잠실역(2호선·11만8171명), 신림역(9만9818명)을 확인한 결과 각 역당 방독면이 200개 비치돼 있었다. 또 환승 등 이용객 수가 많은 합정역(2호선·5194명)에도 방독면이 160개만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교통공사는 역별 이용객 수와 혼잡도, 대피소요시간 및 유지관리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환승역의 경우 200∼550개, 일반역은 150∼200개를 비치한다는 기준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기준에 따르더라도 환승역인 강남역과 합정역은 방독면이 부족한 것이고 다른 역은 간신히 최소 수량(200개)만 충족한 수준이다.

문제는 지하철역에 방독면이 얼마나 비치돼야 하는지 등을 규정한 법적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지하철 승객구호용 화재용 마스크 비치에 대한 법적 기준은 별도로 없다”며 “(방독면은) 의무비치 품목은 아니다”고 답했다.

세계일보

지난 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승강장 구호용품함에 화재용 마스크 30여개가 비치돼 있다.


방독면은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장비로 꼽힌다. 지하철 역사 내 방독면은 2003년 192명(실종 21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다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계기로 구호용품함 내 품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구 지하철 화재 당시 사망자 대부분이 유독가스를 피하지 못했는데 방독면을 착용하면 15분 동안 유독가스를 막아 안전한 곳으로 대피가 가능하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방독면은 손수건 100장, 손수건에 물을 적시기 위한 2L짜리 생수 2병과 함께 구호용품으로 들어가게 됐다.

전문가들은 지하철 구간 및 차량 증가 등으로 이용객 수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지하철 화재에 대비한 체계적인 매뉴얼 구축 등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지하철 이용객 수와 혼잡한 정도, 손수건 등을 사용해 탈출하는 승객 등 모든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역내에는 지하철 최대 탑승객 수의 3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화재용 마스크가 비치돼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진형 동원과학기술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생명과 직결된 심각한 사안에 대한 관련 법규가 없다는 게 문제”라며 “국회에서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의 지하철을 참고해 관련법을 제정하고 실효성 있는 화재 구호용품 비치 매뉴얼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곽은산 기자 silv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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