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2 (일)

“밭농사·그림 농사…‘주경야화’는 오히려 생활의 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농업박물관서 7번째 개인전, 해남 농부 김순복씨

‘농부 화가’만이 표현 가능한 농촌의 일상 담은 60여점 전시

밤에 안방서 상 펴고 작업…“고향과 어머니를 되새겨 봤으면”

경향신문

‘해남 농부 김순복의 행복한 그림농사’란 이름의 전시회를 30일까지 서울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에서 열고 있는 전남 해남의 ‘농부화가’ 김순복씨는 “꿈을 버리지 않고 가꾸다 보니 제2의 인생이 열렸다”고 밝혔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농부가 부지런히 논밭을 찾아야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디 농작물만일까. 그래서 ‘농부의 마음으로 일한다’는 말은 성실함과 깊은 정성을 상징한다.

전남 해남의 농부 김순복씨(62·현산면 향교리)는 ‘두 가지’ 농사를 짓는다. 8000여평의 유기농 밭농사가 그 하나로, 단호박·대파 등을 키워 5남매를 어엿하게 성장시켰다.

부지런하고 자식을 끔찍히 생각하는 평범한 ‘고향 엄마’다. 또 다른 농사일은 ‘그림 농사’다.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하고 번듯한 작업실도 없지만, 2년 전 첫 전시회 이후 6회의 작품전을 했을 정도로 당당한 화가다. 지난해에는 그림과 틈틈히 써온 시를 엮은 시화집 <농촌어머니의 마음>도 출간했다.

해남의 농부화가 김순복씨를 최근 서울의 전시장에서 만났다.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중구 새문안로 소재)에서는 오는 30일까지 ‘해남농부 김순복의 행복한 그림농사’전이 열린다.

7회째인 이번 전시회는 해남에서 다양한 문화활동 플랫폼 역할을 하는 ‘행촌문화재단’과 ‘현산농협’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했다. 모두 60여점이 전시됐다.

전시 작품에는 ‘농부화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농촌과 농촌 사람들의 삶, 희로애락이 생생하다. 작품명만 봐도 그렇다. ‘배추 심는 여인들’ ‘양파 캐기’ ‘감자 심기’ ‘대파밭에서 새참 먹고 쉬기’ ‘고추와 강아지’ ‘봄나들이’….

경향신문

김순복의 ‘모 한 판이 쌀 한 말’(위). ‘마당에서 마늘작업 하기’(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낮엔 농사일을 하고 주로 밤에 그립니다. 피곤하지 않냐고들 하는데, 오히려 피곤이 풀려요. 그림 그릴 생각을 하면 일도 힘든 줄 모르겠고, 즐겁고 행복하죠.” 그래서일까. 그림들은 희망, 행복을 떠올리게 한다. 화사한 색감, 환한 표정의 인물들이 힘든 농사일의 수고로움과 대비된다.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색연필로 그린 세밀한 선들, 수채색연필로 표현한 색면마다 농부들의 소소한 행복이 응축돼 있다. 여러 그림에서 모성애도 느껴진다. 관람객들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오직 그리고 싶다”는 열망으로 “안방에 상을 펴고 그린” 김씨의 그림은 어쩌면 진정한 민중미술이다. 회화 이론을 넘어서는 인간이 지닌 순수한 예술성, 예술의 진정성까지 드러난다.

“사람들과 자연의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낼까를 신경써요. 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거죠….” 김씨가 본격적으로 그림 작업을 한 것은 2015년이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꿨으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결혼하면서 해남으로 와 농사짓고 자식들 키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꿈은 간직했다. “나중에 그림을 그리겠다”고 자식들에게 자주 말했단다. 그런데 4년 전 막내딸이 72색 색연필을 사보냈다. 농사일과 더불어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농부의 마음으로’ 그림 그리기도 시작됐다. 이웃들, 자연, 농사일 등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났다.

“열심히 그려 혼자 보던” 그림은 행촌문화재단 이승미 행촌미술관장(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관)과 만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행촌미술관에서의 데뷔전은 반향이 컸다. 해남을 넘어 광주, 서울로 초대됐다. 한국파버카스텔에서 종이·수채색연필도 후원받는다. “전시회는 늘 설레죠. 많은 분들이 봐주고 사랑해줘 고맙고…. 고향은 뿌리이고, 자연은 어머니라고들 하잖아요. 제 그림을 통해 고향과 어머니, 먹거리의 소중함을 더 새겼으면 좋겠어요.”

김씨는 꿈을 가꾼 덕분에 농부화가로서 제대로 된 ‘인생 2막’을 열었다. “막내가 취직만 하면 더 크고 풍성한 그림을 그릴 겁니다. 삶의 지혜들이 모여진 속담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도 이미 하고 있어요. 시화집도 또 내고…. 제2의 인생이죠.” 이승미 관장은 “창작 활동이 삶의 힘이 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며 “꿈을 가꿔나가는 아주 좋은 사례로, 많은 분들에게 힘과 생각할 거리를 주시는 분”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힘들어도 꿈을 버리지 않았다, 꼭 품고 살았다”를 강조했다. “농사지으면서도 마음속으로 수없이 그림을 그렸어요. 꿈을 품고 있으면 행복하죠. 저처럼 모든 분들이 꿈을 포기하지 말고 품고 더 가꿔나갔으면 좋겠어요.”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