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4 (화)

수험표에 시험문제 적은 의사…법원 “부정행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감독관에게 수험표 반납했지만

옮겨 적는 것 자체가 규정 위반

유의사항을 무시하고 시험 문제를 수험표에 옮겨 적었다간 ‘부정행위자’가 될 수도 있다. 4년간 준비한 전문의 시험에서 문항 일부를 수험표에 적었다가 탈락한 의사가 법원에서도 구제받지 못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 함상훈)는 전문의 자격 시험에서 부정행위 처리된 의사 A씨가 “불합격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대한의학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9일 밝혔다.

A씨는 2015년 3월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병원에서 약 4년간의 인턴 및 전공의 수련 과정을 마친 뒤 지난 1월 전문의 자격 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시험을 마치고 가던 도중 급한 전화를 받았다. “수험표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고사장에 와서 사유서를 작성하라”는 얘기였다.

수험표에 1차 시험 18번 문항의 일부 키워드와 보기를 적은 문장 6줄이 문제가 됐다. 수험표에 시험 문제나 답을 일부라도 옮겨 적었을 경우 부정 행위로 간주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수험표에 적은 뒤 미리 준비한 가짜 수험표와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문제를 유출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A씨는 “수험표를 바꿔치기 하지 않았고 감독관에게 그대로 제출했다. 해당 문제의 정답을 고민하다가 문제를 적어보면서 출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적었을 뿐이고 부정행위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항변했지만 일주일 뒤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부정행위자가 되면 이후 2년간 해당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그러자 A씨는 부정행위가 맞는지 법원에 판단을 구했다. 그는 “만일 시험 문제를 유출하려고 했으면 수험표를 왜 감독관에게 곧이곧대로 반납했겠냐”며 결백을 호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행동이 부정행위가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해당 문제 해결에 필요한 핵심적인 정보 모두를 수험표에 기재해 충분히 해당 문제의 전부를 유출할 수 있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A씨가 수험표를 실제로 바꿔치기 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으로 부정행위라는 걸 뒤집을 수는 없다고 봤다. 규정에는 시험 문제 일부를 옮겨 적는 행위 그 자체 만으로도 부정행위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A씨 역시 시험 전에 규정을 안내 받고 ‘규정 위반으로 인한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겠다’고 자필 서명했다.

재판부는 “문제 유출 행위는 이후 응시자 간 공정성을 심히 훼손시키는 행위로, A씨가 입게 되는 경제적·사회적 불이익이 이 같은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공익보다 크다고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