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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병실에서온편지] 완치가 눈앞인데 치료를 포기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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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 중 아주 드문 케이스…그래서 건강보험에서 소외

쿠키뉴스

저는 네 살 아들의 아빠인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 환자입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비련의 여주인공들은 왜 전부 젊은 나이에 저렇게 백혈병에 걸렸을까 궁금해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가정을 꾸리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던 저에게 불현듯 이 병이 찾아왔습니다.

사흘 넘게 열이 내리지 않아 아들을 부모님 댁에 맡기고 아내와 서둘러 응급실에 갔던 어느 주말의 일이었습니다. 상태가 얼마나 심각하냐는 질문에 교수님은 '이 병은 백혈병 중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하지만 항암 치료 후에 암세포가 사라지는 '관해'라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 완치가 될 수 있다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진단을 받은 그 날 바로 병원에 입원해 1차 항암을 시작했고, 견디기 힘든 열과 구내염, 오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됐습니다. 그렇게 두어 달 동안 무균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며 힘든 항암 치료를 이겨냈지만, 검사 결과 골수 안의 암세포가 여전히 90% 이상인 것으로 나오면서 사실상 1차 항암이 실패했다는 결과를 받아 들여야만 했습니다.

그간의 치료가 너무나 힘겨웠기에 치료 자체를 포기해야 하나 싶은 좌절감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던 중 '블린사이토'라는 약으로 2차 항암을 시작했고, 놀랍게도 1주기 만에 '완전관해' 상태에 도달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골수 안의 암세포는 1% 밑으로 떨어졌고, 이렇게만 유지된다면 한 주기 더 블린사이토를 맞고 조혈모세포이식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을 품으며, 진단을 받은 2018년 12월 이후 가장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직계가족 중 제가 골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연로하셨고, 가장 기대를 걸었던 형과도 맞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도 백방으로 기증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새로운 소식은 없습니다.

당장 한 달 후면 블린사이토 두 번째 주기 치료도 끝이 납니다. 그리고 한 달 안에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치료는 없습니다. 기증자를 찾을 때까지 블린사이토를 맞으면서 관해를 유지하는 공고항암(약물의 세 번째 이상 치료주기)의 경우에는 보험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천만원의 약값을 모두 제가 부담해야 하는데, 이제 막 가정을 꾸린 30대 가장에게는 너무 큰 금액입니다.

제 치료는 왜 보험이 되지 않는 것인지 교수님께 여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는 제가 아주 드문 케이스라고 하셨습니다.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은 희귀한 병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식을 받기 때문에 저처럼 당장 이식을 받을 수 없는 경우는 1년에 2~3명 정도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그 2~3명은 어떻게 되냐는 저의 물음에, 교수님은 지난 해 저와 같은 상황에 있던 환자 분은 결국 기증자를 찾지 못해 관해가 무너진 적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진단 받은 후 단 하루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완전관해 판정을 받았던 그 행복했던 일 주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진단 받던 날 들었던 '백혈병 중에서도 진행이 가장 빠르다'는 교수님 말씀이 마음 한 구석에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치료가 끝나면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없기에, 치료를 받는 하루하루가 더디 가기를 매일 기도합니다. 그러다가도 마음을 바꿔 시간이 빨리 가서 기증자가 어서 나타나기를, 그래서 단 하루라도 완치의 희망을 안고 마음 놓고 잠들 수 있기를 기도하기도 합니다.

이미 한 번의 재발을 경험한 저로써는 그 사이 이 빠른 병마가 다시 나에게 퍼지지 않을까 불안하기만 합니다. '혹시라도 약물 치료를 받지 못하는 와중에 어렵게 도달한 관해가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하루에도 수백 번씩 흔들리는 마음을 어린 아들 생각에 다잡지만 쉽지 않습니다.

약물 치료 덕분에 극적으로 완치의 가능성을 보았지만, 막대한 치료비 부담으로 희망의 불빛은 꺼져만 갑니다. 운이 따라준다면 이식 전까지 지금의 관해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행운이라는 단어에만 생사를 맡기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나날의 연속입니다.

매일 생사를 오가는 저는 지금까지 받던 치료를 조금만 더 받을 수 있기를, 그래서 이식도 받고 완치도 되고 다시 평범한 아빠로, 남편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서울시 김정윤(가명)>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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