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감찰 착수 "징계위 회부"
경찰에 따르면, 한모 조직국장 등 민노총 간부 3명은 지난봄 국회 앞 시위에서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 등으로 지난달 30일 구속돼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갔다. 이때 경찰은 절차에 따라 한씨 등이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와 지갑, 가방 등을 받아서 보관했다.
경찰은 닷새간 추가 수사를 벌여 한씨 등을 '기소'(재판에 부침) 의견으로 검찰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5일 오전 8시쯤 이 3명을 남부교도소로 보내는 호송차에 태우면서, 소지품을 돌려줬다. 이는 규정 위반이다. 수감자를 유치장에서 교도소로 이감(移監)할 때 소지품은 호송 경찰관이 직접 들고 가 검찰에 넘기게 돼 있다. 호송차에는 민노총 수사와 유치 업무를 맡았던 영등포서 소속 경찰관 6명이 타고 있었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씨는 서울남부지검 호송출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20여분간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페이스북에 "몇 달이 될지 아니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지만 동지들 평안을 빈다"고 적고, 자신이 역임한 민노총 간부직이 박힌 명찰 4개를 찍은 사진도 올렸다. 같은 혐의로 구속된 김모 조직쟁의실장과 장모 조직국장 등 다른 민노총 간부 2명도 휴대전화를 돌려받아 들고 있었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서울남부지법은 한씨 등 민노총 간부 3명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선 한씨 등 민노총 간부들이 불법·폭력 집회를 사전(事前) 계획한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도 발견됐다. 그런데도 경찰은 구속 피의자 신분인 한씨가 유치장에서 서울남부지검까지 약 4.5㎞를 이동하는 20여분 동안 휴대전화를 사용하도록 사실상 방관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 교수는 "구속된 피의자가 외부에 연락해 도주를 공모(共謀)하거나 증거 인멸을 지시할 수도 있는 상황을 경찰이 만들어준 셈"이라고 말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최근 "공공장소 불법 폭력 행위에 대한 사법 조치가 선진국에 비해 약하다"며 영장을 기각한 법원 등에 불만을 표현한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럴 거면서 경찰이 구속 영장을 청구·발부해주지 않는다고 검찰·법원을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고 했다.
경찰 안팎에선 "불법·폭력 시위에 대한 수사·재판 과정 내내 민노총에 저자세를 보인 것이 이번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4월 2~3일 국회 앞 집회 때 노조원 25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지만 모두 당일 석방했다. 본격적인 수사도 여론에 떠밀려 시작했다. 집회 중 국회 담장 훼손에 대한 야당의 항의 방문을 받고서야 경찰은 "민노총의 최근 1년간 불법·폭력 행위를 모두 들여다보겠다"며 20여명 규모 수사전담팀을 꾸렸다. 이후 경찰은 민노총 조합원 74명을 공무집행방해와 집회시위법 위반 등으로 입건했지만, 수사 내내 '봐주기 논란'은 계속됐다.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은 경찰의 두 차례 소환 요구에 불응하다가 2개월여 만인 이달 7일에야 출석했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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