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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수돗물, 변기물로밖에 못 써… 음식도 샤워도 생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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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돗물' 인천 서구 가보니

인천 서구 검암경서동 주부 이모(43)씨는 요즘 생수로 거의 모든 집안일을 해결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생수로 커피를 내린다. 식사는 즉석밥과 끓인 생수를 부어 만든 인스턴트 국이다. 설거지는 수돗물에 세제를 묻혀 씻어낸 뒤 생수로 헹군다. 세수할 땐 꼭 생수를 쓴다. 머리 감을 때도 생수로 마무리한다. 빨래는 차로 20분 떨어진 경기 김포시의 빨래방에 가서 빤다. 지난달 30일 시작해 9일로 11일째 이어지고 있는 인천 서구 일대의 '붉은 수돗물(적수·赤水) 사태' 때문에 생겨난 일상이다.

이날 인천 검암경서동 A빌라에서 만난 이씨는 "수돗물은 화장실 변기 물로밖에 못 쓴다"며 "적수 사태 이후 2L짜리 생수 6병 묶음 박스를 30개 넘게 사서 썼다"고 했다. 생수 값으로 10만원 이상 들었다. 수도꼭지에 끼운 개당 1만5000원짜리 필터는 하루가 안 돼 흙탕물 색으로 변한다.

조선일보

설거지도 생수로 - 9일 인천 서구의 한 주민이 설거지 그릇을 통에 담고 생수를 붓고 있다. 싱크대에 대용량 생수가 쌓여 있다. 이날로 11일째 붉은 수돗물이 나오고 있는 서구와 중구 영종동 일부 주민들은 생수로 거의 모든 일상을 해결한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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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아이들이 며칠째 학교에서 빵과 우유로 대체 급식을 먹다 보니 지겹다고 한다"며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터뷰를 하던 이씨는 이웃의 전화를 받더니 곧바로 차를 몰고 1㎞ 정도 떨어진 검암경서동 주민센터로 향했다. 서구청에서 나눠주는 생수를 받기 위해서였다. 받고 보니 250mL짜리 작은 병 12개 1박스뿐이었다. 그나마도 인천시가 수돗물로 제조한 '미추홀참물'이었다. 김씨는 "이 물도 수돗물인데 이걸로 뭘 어쩌라는 것이냐"고 말했다. 나눠주던 주민센터 직원은 "미추홀참물을 믿지 못하겠다며 안 가져가는 주민들도 있다"고 말했다.

열하루째 이어지는 인천 적수 사태로 서구와 중구 영종동 일대 주민의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 A빌라에서 차로 5분 거리의 B빌라 주민 유모씨는 사태 직후 서울 강동구 시댁으로 피난을 갔다. 아무래도 불편해서 지난 7일 다시 집으로 왔는데 세면대 필터가 갈아 끼운 지 15분 만에 누렇게 변했다. 유씨는 "이제는 몸과 마음이 지친다"고 하소연했다. 이웃 주민 김모씨는 "고등학생 딸은 온몸이 가렵다고 하고, 아들은 설사를 한다"고 했다.

검단·검암 주민들의 인터넷 카페에는 "필터에서 작은 벌레가 나왔다"는 글이 올라왔고, 연희동에선 "한동안 좋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녹물이 나온다"는 글이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영종국제도시 엄마들의 카페에서도 "정상적인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민원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급수 사정이 나아졌다는 지역도 있다. 원당초등학교 주변의 한 빌라 주민은 "소화전 방류를 계속 해달라고 민원을 넣었더니 방류 덕분인지 어제부터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적수 현상이 심했던 당하동의 한 아파트 주민은 "필터를 끼면 식수 외에는 사용할 만하다"고 말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수질 검사 민원이 지난 6일만 해도 100건이 넘었지만 8일엔 58건으로 줄었다"면서도 "민원 전화 숫자가 줄었다고 사태가 좋아졌다는 증거는 아니라서 발표하기는 조심스럽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사태가 진정된 후 생수 비용은 물론 수돗물로 인한 각종 피부병 등 피해 사례를 정밀 조사해 모두 배상하겠다"고 했다.

지난 7일 구성된 정부합동조사반의 반장인 김진한 인천대 교수는 "1차 조사 결과를 10일 발표할 예정"이라며 "상수도 관망에 따라 지역별로 편차가 있어 완전한 사태 해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고석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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