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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뜯겨진 페미니즘 대자보…“남성 3명 현상 수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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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반성폭력 모임, 대자보 훼손 CCTV 사진 공개

“여성주의에 대한 백래시”…동작경찰서 수사 나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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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범 현상 수배합니다.’

8일 중앙대학교 반성폭력·반성매매모임 ‘반’(이하 반)은 페이스북에 사진 한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나란히 걸어가는 남성 세 명의 뒷모습이 찍혀있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이 손에 든 물건. 그것은 다름 아닌 제멋대로 구겨진 대자보 여러 장이었다.

사건은 지난달 5월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 달 전 학내 각종 혐오와 반페미니즘 움직임을 비판하며 출범한 반은 이날 ‘중앙대 페미니스트 총궐기’ 행사를 열었다. 총학생회 성평등위원회가 제안한 ‘학내 성평등 및 반성폭력 문화 확산을 목표로 하는 조직위원회(FOC)’ 사업이 최근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이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성평등위는 2014년 총여학생회가 폐지되자 이를 대신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행사가 끝난 밤 9시께 반은 사전에 지정된 장소인 학생회관 앞 게시판에 이런 내용을 담은 대자보 10여장을 나란히 붙였다. 연대의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도 대자보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로부터 5시간 정도가 지난 다음 날 새벽 2시40분께, 대자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다행히 목격자가 있었다. 목격자는 검은 마스크를 쓴 남성 세 명이 갑자기 게시판 쪽으로 다가가 대자보를 뜯어서 들고 학교 밖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장면은 폐회로텔레비전(CCTV)에도 고스란히 잡혔다. 반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은 바로 이 시시티브이 화면을 갈무리한 것이다.

반 관계자는 10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과거에도 여러 번 대자보 훼손 사건이 있었지만 아예 훔쳐가는 건 처음”이라며 “여성주의에 대한 ‘백래시’(backlash: 반발·반격) 양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4~5월에는 반의 출범 소식을 알리는 대자보가 여러 곳에서 찢긴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30일 행사 전부터 온라인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페미X들이 나댄다’, ‘학내 분란을 일으킨다’와 같은 혐오 글이 계속 올라왔다”며 “학내 페미니즘 세력이 가시화되자 자신들이 느끼는 분노와 당혹스러움을 이번 사건으로 표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반은 “이런 행위는 특수절도에 해당하는 엄연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형법 제331조(특수절도)는 ‘야간에 문호 또는 장벽 기타 건조물의 일부를 손괴하고 전조의 장소에 침입하여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 또는 흉기를 휴대하거나 2인 이상이 합동하여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은 대자보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직후인 지난달 31일 112에 신고했고 현재 서울 동작경찰서 형사과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반은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에브리타임(대학생 커뮤니티 앱)에 ‘내가 대자보를 찢었다’며 인증 글을 올렸던 사람에 대해서도 현재 경찰이 아이피(IP) 추적 중”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중앙대 외에도 숙명여대나 성균관대 등 대학 곳곳에서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한 대자보가 훼손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반 관계자는 “게시판에 경고문을 붙이는 등 관리를 강화하라고 학교 쪽에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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