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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아빠를 위해…” 이란 난민의 친구들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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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혁군 부친 11일 재심사

중학교 동창·선생님 등 5명 “난민심사 시스템 너무 가혹”

정부과천청사 앞 1인 시위

경향신문

‘이란 출신 난민’ 김민혁군(오른쪽에서 두번째)과 그의 고등학생 친구들, 교사가 10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김군 아버지가 11일 열릴 난민심사에서 난민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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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된 얼굴의 학생 다섯 명이 주섬주섬 B4용지 크기의 판지를 꺼냈다. ‘가족 재결합은 난민법의 정신’ ‘아빠 힘내세요!’ ‘인권이 소중한 나라, 대한민국’이라고 쓰인 손팻말이었다. 어색한 듯 서로를 툭툭 치며 장난도 하던 이들은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할 때만큼은 진지해졌다. 이들은 친구 김민혁군(16)이 한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 날을 바라며 시위에 나섰다. 한국 사회에서 ‘이란 출신 난민’으로 ‘분류’되는 김군은 이들에게 단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일 뿐이다.

김군과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고등학교 1학년 윤명근(송파공고)·추경식(영동일고)·박지민·최현준(이상 잠일고)군은 11일 난민심사를 받는 김군의 아버지가 난민으로 인정되도록 정부에 촉구하기 위해 10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 모였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 부근에 사는 친구들은 이날 시위에 나서느라 아침부터 이른 길을 재촉했다. 추군은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집에서 정부청사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 김군과 친구들 4명, 중학교 당시 김군의 지도교사였던 오현록 서울 아주중학교 교사가 모였다. 박군이 먼저 성명서를 읽어내려갔다.

“지난해 저희는 재판부에 보내는 민혁이 아버님 탄원서 쓰는 것을 끝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뿔뿔이 흩어져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 그동안 민혁이 아버님은 재판에서 지셨고(난민 지위 불인정), 외로운 친구 민혁이 곁을 지켜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희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작게는 민혁이 아버님을 위해서고 크게는 이 같은 가혹한 난민심사 시스템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친구들 모두 한마디씩 보탰다. 이들은 7살 때부터 한국에서 10년 동안 함께 살았던 김군과 아버지가 헤어져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들은 “난민법의 정신에 따라 인도적이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 민혁이 아버님을 난민으로 인정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성명서 낭독을 끝내고 김군과 친구들 5명이 20분씩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첫 번째 시위자로 선 최군은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이곳에 왔다. 최군과 달리 아침 일찍 학교에 들러 조퇴 신청을 하고 온 이들도 있었다.

낮 12시가 다가오면서 정부청사 직원들이 하나둘 문을 빠져나왔다. 학생들 시위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뭐야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다. 다른 누군가는 “아~ 난민~”이라는 감탄사를 내뱉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떤 이는 “아 진짜 그만 좀 하지”라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윤군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김군과 만났다. 벌써 10년이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은 일종의 낙인이다. ‘난민’ 김군은 윤군에게 그저 ‘친구’다. 윤군은 “밖에서 보면 아무래도 ‘난민혐오’가 있을 수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멀리서 보는 것과 다르다”며 “(민혁이에 대한) 편견이라고 할 게 우리에겐 없다”고 말했다. 다음날 있을 김군 아버지의 난민 재심사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도 전했다. 그는 “민혁이가 워낙 힘든 티를 안 낸다”면서도 “내일 잘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군과 아버지는 2010년 입국해 종교적 박해 등을 이유로 난민 신청을 해왔다. 김군은 난민 인정을 받았지만, 아버지는 탈락했다. 김군 아버지는 올해 2월 난민 재심사를 신청했다. 아버지의 난민 재심사는 11일 오후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별관에서 열린다. 김군은 심사가 끝날 때까지 출입국청 별관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친구들은 함께하지 못한다.

김군은 “내일(11일)은 친구들이 없어 긴장된다. 하지만 내가 노력하는 만큼 사람들의 편견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며 “아버지의 난민 지위가 인정되면 그간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치료받지 못하고 계신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가고 싶다. 제주도 여행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고희진·김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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