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2 (일)

[김세형 칼럼] 문재인 연설 트럼프와 비교하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6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주년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현충탑에 헌화한 뒤 분향하고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세형 칼럼] 6월 6일은 한국은 현충일, 서방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의 공통 가치는 압제로부터 자유를 구한 숭고한 희생자의 넋을 후손이 기리는 의미가 있다.

우리의 현충일은 북한 김일성 괴뢰가 남침하여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희생한 40만명의 젊은 넋을 기리기 위해 종전 3년 후 1956년에 제정했다.

한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를 했고 올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을 기념해 서방 16개국 정상들이 제각각 의미 있는 스피치를 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가장 직접적인 혜택을 본 국가는 히틀러의 압제에서 5년 만에 자유를 되찾은 프랑스였다.

대군주(Overlord) 작전으로 명명된 세기의 전투에서 아이젠하워 사령관은 히틀러 최고사령부를 따돌리려 무수한 기만전술을 써서 대성공을 거뒀다.

적을 홀리기 위해 일부러 다른 곳을 정찰하고 전투함을 보내곤 했다.

당초 6월 5일을 D데이로 잡았다가 마지막 순간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씨 때문에 24시간을 늦췄다.

조수 간만과 야간에 공수부대가 뛰어내리는 달빛을 감안, 이 시기를 늦추면 2주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독일 최고사령부는 연합군이 쳐들어 오겠지만 5, 6일은 아니고 그 장소도 파 드 칼레가 될 것이며 노르망디는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 시점에 1만명의 희생은 각오했으나 기만전술이 먹혀들어 사상자는 극소화된 반면 독일군은 7월 중순에 이미 16만명의 사상자를 내며 승부를 갈랐다.

마침내 르 클레르가 지휘하는 3만명의 프랑스 군대가 8월 24일 파리를 독일군에게서 뺏어내고 항복문서를 받아냈다.

드골 장군은 26일 오후 개선문 앞에서 승전 기념식을 가졌다. 프랑스 시민은 5년2개월 만에 돌아온 군대를 보고 눈물바다의 환희 속에 승리를 만끽하고 히틀러를 마음껏 저주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노르망디 작전 75주년 기념연설에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자유를 빚졌다. 프랑스를 대표해 참전용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트럼프를 돌아보며 "미국은 다른 이들의 자유를 위해 싸울 때는 가장 강대했다"고 치켜올렸다.

매일경제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포츠머스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기념 행사에 각국 정상들이 참석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찰스 영국 왕세자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그리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마크 루테 네덜란드 총리. /사진=포츠머스[영국]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나는 처칠의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의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한국도 일본의 8·15항복선언 직후 광복군이 들어와 일본군에게 항복문서를 받고 일본군을 패대기치는 장면을 국민 앞에 보여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에 몸을 떨곤 한다.

그리고 임시정부의 김구나 이승만이 귀국해 국정을 인수했더라면... 그러면 남북분단도 없었을 터이고....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 임시정부는 미국 중국 등 연합국에게서 존재를 승인받지 못했고 그 이유는 광복군의 존재가 너무 미미했기 때문이다.

광복군 1, 2, 3지대를 합쳐 대략 600명에 불과했으므로 이는 프랑스의 임시정부 군대 15만명에 비하면 존재감이 취약했다.

문 대통령은 현충일 연설에서 김원봉이 조선의용대를 이끌고 광복군에 합류함(1942년)으로써 좌우합작이 이뤄졌고 정부 수립 후 국군 창설의 씨앗이 됐다고 연설했다.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창설했지만 병력의 80%가 중국 공산당으로 넘어가 버려서 세력이 크게 약화됐다.

설상가상 장개석 정부가 조선독립운동에는 김구 주석의 임시정부 광복군으로 재정지원을 단일화하겠다고 하자 마지못해 합류했으나 끝내 비협조적이었다.

문헌에 따르면 김원봉이 데리고 온 병력은 겨우 20~30명밖에 안되는 오합지졸에 불과했다고 한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김원봉이 임시정부 취소운동을 맹렬히 전개했다"고 썼다.

해방 후 미군정하에 김구조차도 자리를 잡기 어려운 마당에 김원봉의 존재감이 워낙 미미해 월북한 것으로 보이며 북으로 넘어가 김일성 치하의 국가검열상이란 장관을 지내고 한국전쟁 때 간첩을 남파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김원봉은 김구 주석과 일할 때나 해방 후 남한 생활, 그리고 월북 후 권력투쟁 와중에 처형된 일생을 볼 때 어느 누구와도 화합하지 못하는 분열형, 외로운 늑대형 인간이었던 것 같다.

매일경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포츠머스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기념행사 참석 중 활짝 웃고 있다. /사진=포츠머스[영국]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시 노르망디 기념식으로 돌아가서 이번엔 트럼프의 연설을 들어보자.

그는 "우리의 소중한 동맹은 전투의 열기 속에 만들어져 전쟁의 시도에 도전받으며 평화의 축복으로 입증됐다. 이 연대는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전날 포츠머스 기념식에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기도문을 낭독했다.

평소 갈등을 일으키곤 했던 트럼프는 엄숙한 보훈의 날인 6월 6일만큼은 완벽하게 훌륭한 지도자로 행동했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면서도 민주당 출신 루스벨트 대통령의 기도문을 역사에서 불러냈다.

트럼프 회견 시 까다로운 질문을 퍼부었다 백악관 출입정지를 받았던 CNN 기자 짐 아코스타는 "오늘만큼은 트럼프의 연설이 옳았다"고 칭찬했다.

이번 현충일 기념사를 듣고 한국의 보수언론이 "문재인 대통령 최고!"라고 해준 격인데 실제로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현충일은 6·25 때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일이다. 북한이 그 가해자여서 김정은이 서울 답방을 할 경우 6·25 남침 사과를 받고 허용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와 있는 터다.

그렇다면 현충일의 주인공은 한국군경 사망자 62만명, 부상자 45만명 그리고 유엔군 희생자여야 한다.

유엔군은 문 대통령 연설문에 나오는 대로 사망자 3만3000명, 영국군 1078명, 터키군 966명, 캐나다군 516명 등의 순이다.

6·25전쟁은 사실 맥아더가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재가도 채 얻기도 전에 미군을 번개작전하듯 파병하지 않았더라면 한 달도 안돼 남한의 완전공산화로 끝을 맺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충일에는 언제나 맥아더를 추념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본다.

이번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생존 참전용사들을 모두 초청했듯이 우리도 미국, 영국, 터키 등 21개국 군 관계자 또는 국가 정상을 초청해 행사를 치른다면 좋지 않을까.

현충일을 외교활동의 장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국론통합으로 활용한다면 더욱 뜻깊을 것이다. 1년간 기념행사를 치르다 보면 그런 날이 있기도 한다면 맨날 정치싸움만 봐왔던 국민들도 의기투합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성대하게 치르는 주요 기념일은 3.1절, 4·19 학생운동, 5·18 광주사태, 현충일, 8·15 광복절 등이 있다.

이런 행사에서 문 대통령은 늘상 기념사를 한다. 그런데 국민의 기억 속에 어떤 말들이 맴돌고 있을까?

친일 잔재(작년 8·15), 칼 찬 순사(금년 3·1절), 독재자의 후예(금년 5·18)에 이어 이번 현충일에는 김원봉 서훈 문제를 꺼냈다.

문대통령은 6·10 민중항쟁 기념사에서 "좋은 말을 골라 쓰는 것도 민주주의의 미덕"이라고 했는데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그 이전 행사들에 내놓은 메시지는 좋은 말로 이뤄져 있는가?

지금 세계를 둘러보면 미·중 패권전쟁으로 각국을 줄 세우기 하는 엄중한 상황이다.

한국 경제는 대통령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하더니 북유럽 3개국 순방을 즈음해 느닷없이 청와대가 경제난을 수긍하고 나섰다.

이렇게 어려운 시점에서 트럼프가 루스벨트의 기도문을 낭독했듯 문대통령도 자유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자유를 지켜내고 소득 3만달러를 일궈낸 자랑스러운 역사의 인물들을 이끌어내 칭찬하면 좋았을 것이다.

이승만이든 박정희든 과도 있겠지만 오늘의 한국의 초석을 놓는데 김원봉보다 그들이 훨씬 큰 공로를 세우지 않았겠는가.

문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로 온나라가 들끓자 청와대는 "김원봉 서훈 불가"로 백기를 들었다.

어쩌면 이모든 소동이 문대통령이 "김원봉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한잔 바치고 싶다"고 페이스북에 쓴게 발단이 됐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항간에서는 대통령이 영화를 보고 결정하고 책을 읽고 뜬금없는 사람을 발탁해 문제가 생기곤 한다는 말이 유행이다.

이념적으로 편향되고 머리가 텅 빈 참모를 옆에 두는 시스템이라면 더 원초적인 문제이겠지만.

[김세형 고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