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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209억 뿌렸는데…받은 이 없는 ‘함바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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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 유상봉 10여년 전 1만1878건 현금 인출 살포

연루 인맥만 1000여명인데 혐의 부인·증거도 안 남아

유씨 진술마저 ‘오락가락’

‘함바 브로커’ 유상봉씨(73)는 2007년 2월부터 2010년 9월까지 3년8개월 동안 현금인출기로 209억930여만원을 인출했다. 모두 1만1878건이었다. 2011년 8월 유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강희락 전 경찰청장에 대한 1심 재판 판결문에 적시된 사실이다. 판결문엔 유씨의 금품 살포 방식이 잘 나타난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유씨가 본인, 회사 또는 타인 명의의 은행 계좌를 사용하면서 항상 2~3개의 현금카드를 들고 다닌다고 했다. 유씨는 수시로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아 로비 대상에게 건넸다. 유씨가 사용한 현금인출기 위치는 자신의 사무실 쪽이 많다. 만남을 약속한 고위 공무원, 건설사 관계자 사무실 쪽 인근의 현금현출기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씨는 계좌 인출 한도액(600만원)이 넘으면, 다른 사람 명의의 계좌로 돈을 이체시킨 뒤 해당 계좌 명의자에게 현금을 인출하게 해 전달받았다. 계좌 명의 대여자들은 유씨의 가족이나 직원 등이었다.

유씨는 현금인출기에 비치된 은행봉투에 돈을 담았다. 1만원권은 100만원, 5만원권은 500만원 단위로 넣었다. 두번 접은 돈봉투를 양복 양쪽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유씨는 청탁 대상의 중요도에 따라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건넸다고 했다. 1000만원 이상 거액 때는 100만원짜리 봉투 10개를 서류봉투에 넣은 뒤 윗부분과 양옆을 조금 접고, 다른 서류봉투에 거꾸로 넣었다. 일반 서류가 든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더 많은 액수를 줄 때는 가방이나 쇼핑백을 활용했다.

유씨가 현금 209억930여만원을 인출한 것은 사실이다. 돈을 줬다는 사람은 있는데, 받았다고 인정한 이들은 드물다. 유씨가 구속 전까지 만난 경찰고위 간부, 고위 공무원, 공기업 건설사 임직원 등은 1000여명에 달했다. 유씨는 강 전 청장과 같은 고위 경찰관들과 먼저 인맥을 쌓은 뒤 건설현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관할서 관계자들을 소개받았다. 유씨가 2009년부터 약 1년간 강 전 청장의 소개로 전화를 건 경찰서장급 고위경찰 간부만 32명이었다. 이 중 다수는 실제로 유씨와 만났다고 인정했지만 금품 수수 의혹은 인정하지 않았다. 209억930여만원의 현금 대부분이 기계에서 인출된 뒤 허공에 사라진 셈이다.

뇌물수수 입증이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현금을 인출해 대량으로 살포하면 증거도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려면 당사자들 진술에 의지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기억도 흐릿해진다. 10여년 만에 다시 불거진 함바 비리 수사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

유현철 경기 분당경찰서장(경무관) 등 전·현직 경찰 고위직의 금품 수수 혐의(경향신문 6월10일자 1·4면 보도)를 수사하는 경찰은 “고발 당사자인 유씨가 진술을 바꾸거나 답을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유씨로부터 금품을 받았다고 지목받은 경찰 고위 간부들도 “유씨를 만난 적은 있지만 돈을 받지는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한다. 과거 수사에서 혐의가 드러난 건 강 전 청장과 이모 전 경찰청 경무국장, 김모 전 울산지방청장 등 몇 건 되지 않는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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