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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오래 전 ‘이날’]6월12일 20년 전 ‘나혼자 산다’···‘FIT족’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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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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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12일 독신주의자냐구? 아냐, 독신자야!

네 집 중 한 집이 혼자 사는 ‘1인 가구’ 전성시대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총 562만 가구로 전체 가구수의 28.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이제 우리나라의 가장 흔한 가구 형태로 자리매김했지요. 하지만 20년 전만해도 1인 가구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남달랐습니다. 4인 가구가 ‘보통’이었던 당시에 혼자 사는 나홀로족들은 ‘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999년 6월 12일자 경향신문을 살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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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1인 가구를 ‘FIT족’으로 정의했습니다. ‘FIT’는 ‘Free Individual Travel:1인용 맞춤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로 20~30대 독신(Free) 전문직 종사자들(Intelligent Tribe)를 가리키는 신조어였습니다. 기사에서는 ‘대부분 독신주의자는 아니면서 ‘나홀로’ 생활을 능동적으로 즐기는 사람들’로 정의했네요.

외국계 회사 한국지점에 근무하는 30대 중반의 ‘FIT족’ ㅇ씨의 일상을 살펴볼까요.

2년간의 직장생활 후 미국유학을 떠나 3년만에 MBA(경영학석사)를 마치고 귀국한 ㅇ씨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대신 혼자 사는 쪽을 택했습니다. 부모님 집과 강남의 직장이 멀기도 했고, 유학생활을 하면서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20평형 아파트를 전세냈다고 합니다.

ㅇ씨의 평상시 생활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아침 6시 집근처의 헬스클럽에 나가 수영을 한 뒤 30분 거리의 직장으로 출근, 퇴근은 오후 6시. 직장동료와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회를 관람한 후 그 오케스트라의 CD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CD를 들으며 차를 한잔 마신 후 컴퓨터를 켜고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뉴스와 정보를 검색한 후에야 잠자리에 든다”

그녀는 이 생활이 외롭거나 불편하기는커녕 매우 만족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주중에는 일 때문에 외로워 할 틈이 없고 주말에는 여행이나 쇼핑,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비슷한 일을 하는 독신 친구들과 소문난 식당을 찾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하네요.

ㅇ씨는 독신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결혼하면 독신생활을 청산하겠지만 아직은 일이 재미있고, 마음에 드는 남자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1~2년은 FIT생활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FIT족들은 ㅇ씨의 경우처럼 결혼을 미루고서라도 개인적 성공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만큼 성취욕구가 강했습니다.

당시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독신자들을 비정상적인 성격의 일탈자로 보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는 옛말”이라며 “요즈음 신세대 FIT족들은 적극적이고 당당한 인털리 집단”이라고 밝혔습니다. 대부분 독신주의자들은 아니며 배우자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 결혼이 늦어지거나 이혼한 후 새로운 배우자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했네요.

이들 FIT족은 현재 유행하고 있는 다양한 1인 경제의 시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20~30대 독신가구들이 소비시장에 두각을 나타내며 미니밥솥, 미니세탁기와 청소기 등 1인용 가전제품을 비롯해 간편식과, 포장 채소와 깎아놓은 과일, 모닝콜서비스, 청소 대행업, 물건을 대신 사주는 구매대행업이 성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익숙한 ‘혼행(혼자 여행하기)’의 유행도 이들 FIT족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해외 왕복항공권과 숙박지만을 예약한 후 나머지 일정은 배낭여행처럼 혼자 돌아다니는 ‘FIT 여행’이 20~30대 사이에서 유행하며 그룹별 패키지 여행보다 2배나 비싼 수준에도 불구하고 FIT 여행객이 2배 가량 늘어났다고 합니다.

동시에 강한 또래 집단을 형성하는 것도 FIT족의 특징이었는데요, 예술, 패션, 학계 등 자신들의 전문분야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고, 2~3개의 사적인 모임에 속해 있으며, 다른 독신들과 만나서도 대부분 일에 대한 이야기나 정보교환을 하면 시간을 보낸다고 하네요.

‘혼밥’(혼자 밥먹기), ‘혼영’(혼자 영화보기) 등 혼자 하는 것을 선호하는 요즘의 ‘나홀로족’과 닮은듯 다른 모습입니다.

당시 이와같은 독신가구 증가의 이유를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이혼이 늘어나는 등의 사회변화”에서 찾았습니다.

현재는 단순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넘어 비혼과 만혼의 확산, 고령화 현상 등 1인 가구 증가 요인이 사회전반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지요.

FIT족들이 ‘경제력을 확보한 전문직 종사자’들이라는 것에 비해 최근 1인 가구의 빈곤화, 노령화 등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점도 달라진 시대상입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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