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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5 (수)

[오래 전 ‘이날’]6월13일 성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던 ‘박연차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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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30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2009년 6월13일 용두사미로 끝난 ‘박연차 게이트’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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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정국을 뒤흔들어 놨던 사건 중 하나는 ‘박연차 게이트(박연차 정관계 로비 사건)’였습니다. 농협과 세종증권 관련 주식조작과 관련된 수사에서 드러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전방위적인 뇌물수수 혐의가 밝혀지면서 일어난 사건인데요. 뇌물의 끈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게까지 이어졌다는 의혹이 인 사건이었죠.

2009년6월13일 경향신문은 2008년 11월부터 시작된 ‘박연차 게이트’ 검찰 수사 결과 발표를 보도했습니다. 약 1년 전인 2008년 3월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4월은 잔인한 달,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네”라는 시구를 인용하며 최종 성과를 자신했죠.

하지만 수사 결과는 초라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년이라는 대장정을 방불케 하는 수사였지만 결과는 ‘실패한 수사’ ‘용두사미 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는데요. 그 이유는 저인망식 싹쓸이 표적수사에 혐의와 관련없는 내용을 파헤치고 흘리는 등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총망라해 보여줬다는 것 때문입니다.

용두사미식 결말은 수사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이미 예고됐습니다. 전 정권을 타깃으로 한 기획·사정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무리한 수사와 파국을 불렀다는 지적입니다.

검찰총장의 직할부대이자 권력형 비리를 전담했던 대검 중수부가 재계 순위 600위권에 불과한 태광실업의 탈세 혐의 수사를 맡은 것 자체라 표적수사의 방증이었다는 얘기인데요. 수사의 단초를 제공한 탈세 혐의도 관할 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니라 ‘국세청의 중수부’라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특별세무조사를 벌여 얻은 결과였습니다.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은 세무조사 결과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국세청과 검찰이 처음부터 태광실업과 박연차 전 회장이 아니라 구 정권과 친노 세력을 겨냥한 ‘그랜드플랜’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셈이죠.

검찰이 수사 대상을 선별했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됐습니다. 베트남에서 박 전 회장을 수행했던 이모씨는 민주당 이광재 의원의 공판에서 “(베트남을 방문한) 차관급 이상 VIP만 10명 이상 된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의 수사를 받은 고위 관료는 거의 없었습니다.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아 수사할 수 있는 이들은 다했다”며 “(이씨가 증언한 이들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수사가 최종 목표인 노 전 대통령으로 향해가면서 검찰의 ‘과잉수사’ ‘정치적 보복수사’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갔습니다. 노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가 법리상 모호하고, 박 전 회장의 진술에만 의존해 증거가 부족한데도 검찰이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 때문인데요.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리며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비판도 거세졌죠. 2009년 4월 한 공중파 방송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고급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의혹이 검찰 출처로 보도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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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의 목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기세등등하게 진행되던 수사는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어졌습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끝이 났죠. 하지만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는) 박 전 회장의 피의사실이 인정되지만 노 전 대통령을 불기소했기 때문에 기소하지 않는다”며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간접적으로 재확인했습니다.

검찰은 수사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검찰 책임론’의 근거를 조목조목 반박했죠. 검찰은 “국세청의 고발에 따라 수사를 시작했고 불법자금 수수 단서가 발견돼 소속 덩장과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다”며 보복 표적 수사가 아니라고 항변했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는 내용 뿐 아니라 형식도 초라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당시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기자실에서 5분 가량 발표문을 읽고 돌아갔는데요. 통상 대형사건 수사 발표가 2~3시간 이상 진행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당시 발표일을 금요일로 택한 점도 주목할 만한데요. 이는 수사 결과에 대해 논란과 비판이 거셀 때 검찰이 택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합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엔 상대적으로 언론이나 여론의 관심이 덜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박연차 게이트 검찰 수사는 핵심 비리 인사 20여명의 기소와 전직 대통령의 서거, 검찰 총장의 낙마로 마무리됐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검찰 수사는 이때처럼 무리하게 이뤄지진 않고 있을까요. 검찰 권력에 대한 언론과 정계, 시민들의 감시와 비판이 지속돼야 할 것입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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