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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Tech & BIZ] "빛으로 그려내는 반도체 회로, 더 가늘게 더 가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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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대전(對戰)이 벌어지고 있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설계를 전문적으로 하는 퀄컴·엔비디아·애플과 같은 팹리스(fabless·공장 없는 반도체기업)에서 반도체 설계도면을 받아, 대신 대량 생산하는 사업이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은 올해 700억달러(약 82조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 시장은 대만의 TSMC가 주도하고 있다. 1987년 창업한 TSMC는 파운드리라는 개념을 처음 만든 기업이다. 세계 시장의 절반(48.1%)을 차지하고 있다. 기술력도 가장 앞선다. 작년에 세계 최초로 7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공정을 상용화했다.

최근 삼성전자가 TSMC의 파운드리 아성에 강력한 도전자로 등장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EUV(극자외선·Extra Ultra Violet) 노광장비를 활용한 7나노 공정을 상용화했다. TSMC와 같은 급의 기술을 구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여기에 지난 4월에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에서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비(非)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가운데 98조원을 파운드리에 쏟아붓는다.

◇7→5→3나노… 관건은 선폭 줄이기

파운드리의 핵심 경쟁력은 고객이 주문한 반도체를 얼마나 빨리, 많이 생산해주느냐다. 반도체는 회로의 선폭(線幅)이 미세할수록 같은 크기의 웨이퍼(반도체의 원재료)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TSMC 역시 미세 공정 기술 개발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반도체 미세 공정이 빛을 발하는 곳은 회로를 그리는 노광(露光) 공정에서다. 노광이란 마치 사진을 필름에 인화하듯, 빛을 웨이퍼에 쏴서 회로를 인쇄하는 것을 뜻한다.

조선비즈

/그래픽=양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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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웨이퍼 위에 회로를 입혀주는 감광액을 얇게 도포한다. 그 위에 빛을 모아주는 역할을 하는 렌즈를 올려놓고, 반도체 설계도인 마스크를 씌워 빛을 쏘면 웨이퍼에는 미세한 회로가 남는다. 빛을 쏘인 감광액 부분이 사라지면 웨이퍼 위에는 나노 단위의 미세한 회선들이 그려지는 것이다.

회로 선폭을 줄이려면 이런 빛을 좀 더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 빛의 파장을 좁혀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쓰던 기술은 불화아르곤(ArF) 노광 방식이었다. 아르곤과 플루오린 가스가 레이저와 혼합되어 193나노미터 파장의 빛을 방출한다. 이 빛을 활용한 최소 선폭의 한계는 10나노였다. 미세 회로를 그리기 위해서는 빛을 여러 번 쏴주는 공정이 필요했다. 그만큼 생산 시간도 길고 생산량이 감소하는 단점이 있었다.

차기 기술은 EUV 노광 방식이다. EUV 노광 기술은 빛의 파장이 13.5나노미터에 불과한 극자외선을 광원(光源)으로 쓴다. 불화아르곤과 비교하면 파장이 14분의 1이다. 선폭도 이 기술로 현재 7나노가 구현됐고 조만간 6나노, 5나노, 3나노 공정도 가능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7나노 반도체를 양산한 데 이어 내년에는 5나노, 2021년에는 3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상용화하겠다고 밝혔다. 3나노 공정은 현재 7나노보다 반도체 크기는 45% 줄이면서, 성능은 35% 키우고, 전력 효율은 50% 더 향상시킬 수 있다. TSMC 역시 2021년에 5나노 플러스 공정을 상용화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의 5나노보다 한 단계 진화한 공정이라는 게 TSMC의 설명이다.

◇주춤한 TSMC, 바싹 뒤좇는 삼성전자

시장 상황은 삼성전자에 다소 유리한 형국이다. 압도적인 세계 1위인 TSMC가 올 들어 격화되고 있는 미·중 무역 전쟁의 유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TSMC는 매출의 30%를 중국 화웨이와 미국 애플에서 벌어들인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인해 화웨이 스마트폰·서버(대용량 컴퓨터) 생산·판매가 급감하면서 TSMC의 수주 물량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반미(反美) 감정이 심해지면 애플 아이폰 불매 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TSMC는 아이폰 물량 감소로 인한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TSMC 측은 최근 주주 초청 행사에서 "이번 사태는 단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발 빠르게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 미국 IBM의 서버용 CPU(중앙처리장치) 생산을 수주한 데 이어 최근에는 미국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그래픽용 반도체), 퀄컴의 차세대 반도체인 스냅드래곤865까지 수주한 것이다. 특히 퀄컴은 올해 선보인 전략 반도체인 스냅드래곤855의 생산을 TSMC에 맡겼다가, 다시 삼성전자로 선회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기술력을 퀄컴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시장은 향후 자율주행차, 스마트 시티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등장하면 급속도로 성장할 분야"라며 "조기에 기술력을 안착시켜놓으면 막대한 수주 물량을 빨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강동철 기자(charle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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