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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장욱진과 김인옥 회화의 미루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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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장욱진 1987년작 '가로수'. /사진=노화랑


[요요 미술기행-10] 횡으로 늘어선 녹색의 가로수, 황톳길 초입 좌우 병렬로 줄을 선 가로수가 아니다. 장욱진(1917~1990)의 녹색 가로수 아래로는 가족이 길을 간다. 쭈빗쭈빗 시골 총각 더벅 머리 같은 나무 이파리 더미 위로는 집이 올라가 있다. 장욱진의 미루나무는 또래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살아온 시대의 풍경이 미니멀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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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옥 `항금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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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옥 작가의 채색은 한국화의 수묵, 서양화의 수채화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30여 년 전 터를 잡아들어간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항금리.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던 '항금리 가는 길' 시리즈는 가을이면 황금색으로 변하는 고려시대 금광마을 황금리 초입 가로수가 모티프이다. 어린 시절 시골 미루나무 가로수가 이어지던 고향 길을 그렸다. 김인옥은 순지를 배접한 캔버스에 도료를 섞어 색을 입혔다.

1960년대 중반, 나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경상도 양동마을 외가에 머물렀다. 부산에서 동생들을 키우며 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손을 덜기 위해 외할머니가 데려온 것이다. 아침이면 메아리 진 부엉이 울음 소리와 봉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순한 햇살에 잠을 깨었다. 양동마을과 장이 서는 인근 안강으로 나가는 길은 미루나무 가로수였다.

삶의 일상에 젖어가면서도 부엉이만 보면 걸음을 멈추었고, 미루나무 두 그루만 서 있어도 본능적으로 알아보았다. 어느 비오는, 건너에 운동장이 보이는 초등학교 담장을 등진 서울 이촌동 2층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김인옥, 김강용 작가 부부에게서 항금리 터로 들어가는 황금빛 가로수 길 얘기를 들으면서 양동마을을 떠올렸다.

장욱진이 국내 최초로 제대로 된 카달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 전작 도록)를 펴내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그의 작품들을 살폈다. 장욱진이 경기도 양주군 미금시 삼패리(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395-1 일원에 열 평 남짓한 크기의 슬라브 양옥을 짓고 생할하기 시작한 일명 덕소 시절(1963~1974), 술 고래인 장욱진이 이틀을 풀 밭에 드러누워 있었다는 일화를 들으면서 미루나무가 겹쳐졌다. 양동 마을의 미루나무는 듬성듬성 성기게 서 있었다. 장욱진도 술에 취해 미루나무 아래 햇볕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 채 드러누웠을 것이다. 덕소 시절 화실 외벽에 그린 벽화를 어느 화상이 야밤에 뜯어 옮겼다는 일화도 있다.

장욱진은 양정고보를 졸업한 1939년 일본 동경제국 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해 1943년에 졸업하였다. 동경제국 미술학교 출신인 김종하는 생전에 필자에게 '장욱진의 입학 원서를 가져다주었다. 성실 근면하게 공부했고, 정상적으로 졸업했다'고 말했다. 입학은 했으나 엉뚱한 일에 관심이 많아 졸업하지 못한 유명 화가를 염두에 둔 말이기도 했다. 이 분도 고인이 되었다.

장욱진은 1947년 김환기, 백영수, 유영국, 이중섭과 함께 '신사실파'를 결성한다. "조형적으로 아카데미즘을 거부하고 전통적인 요소의 현대적 번안을 연구한 모더니스트들"(미술평론가 정영목)이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프랑스로 이주해 30여 년 만에 귀국한 마지막 신사실파 백영수의 비슷비슷한 구도의 '가족' 시리즈에는 유난히 많은 갈색 배경과 단순하게 굵은 미니멀한 형태 선으로 인물을 표현한 게 특징이다.

덕소 시절 이후 장욱진의 작품은 "화면의 질감이 약화되고 담채 느낌이 강조되는 수묵 유화의 단계"(정영목)로 전이된다. 대상으로서 녹색의 미루나무 역시 이러한 화풍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김인옥은 수년 동안 중국 베이징 798에 작업실과 갤러리가 있었다. 딸의 공부 때문이기도 했다. 점점 귀국 날자가 다가오면서 그녀의 작품 속 풍성한 숲에는 바다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강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 조각구름 걸려 있네 / 솔바람이 몰고 와서….'

동요 '흰 구름' 가사에도 등장할 만큼 미루나무는 우리 삶에 매우 친숙한 나무이다. 과거에는 서울 변두리 동네서도 볼 수 있는 흔한 나무였으나 지금은 옛 마을길 사진에나 등장하는 나무가 됐다.

광주전남 연구원 송태갑의 '정원이야기'는 미루나무의 연원을 정확하게 나타낸다. 버드나무과 사시나무속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인 흔히 포플러(Poplar)라고 부르는 수종은 포플러, 미루나무, 양버들 등이 있다. 식물학적으로 각각 다른 나무지만 정서적으로는 같은 나무였던 것이다. 처음 유럽에서 수입할 때 사람들은 미국산 버드나무라고 생각해 미류(美柳)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어느 순간 미류가 미국산 버드나무가 아닌 아름다운 버드나무란 뜻으로 부르게 되자 이를 구분하기 위해 '미루나무'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회화의 대상으로서, 필자의 어릴적 추억의 상징이었던 미루나무는 개발연대 산림 녹화 시기에 국가적 자원으로 식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흰 구름'이라는 노래 제목보다는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 있네'로 시작하는 가사로 잘 알려진 동요의 작사가는 박목월 시인이다.

[심정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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