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만으로 장르 바꾸는 신스틸러
'미스터 션샤인 '눈이 부시게' 이어
연기 호평 쏟아지는 28년차 배우
연극영화과 시절에는 연출만 맡아
영화 '기생충'에서 이정은이 연기한 박사장네 입주가정부 문광. [사진 CJ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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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 이름이 ‘문광’이라니까 제 딴엔 문(門)이나 광(廣)하고 상관있나, 영어 문(Moon‧달)을 써서 달밤에 미친 광녀인가, 여러 상상을 했죠. 감독님한테 뜻을 물어보진 않았어요. 워낙에 딱 이거다, 얘기 안 하시는 편이라.”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더해 75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기생충'의 배우 이정은(49)의 말이다. 빈부 양극화를 꼬집은 이 희비극에서 그가 맡은 문광은 부잣집 박사장(이선균)네 입주가정부. 비중으론 조연이지만 관객 백이면 백 그를 신스틸러로 꼽는다. 쏟아지는 호평에 그는 "이야기가 좋으면 출연분량은 1분이든 2분이든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해왔다"며 "약간 부담도 되지만 계속 열심히 하란 격려 같다"고 했다.
이정은이 직접 찍은 '기생충' 700만 돌파 인증샷. [사진 CJ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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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타이틀롤이잖아요, 옥자가. 감독님의 주문이 추상적이었어요. 감정이 느껴지는 숨소리, 소녀가 떠나서 그리워하는 울음소리…. 상상 속 캐릭터다 보니 비슷한 짐승 소리를 발췌하고 엄청나게 준비했죠. 감독님이 ‘너무 많이 노력하셨다’더니 ‘저하고 앞으로 말도 안 되는 걸 하자’시더군요.”
왼쪽이 이정은이 목소리 더빙한 슈퍼돼지 옥자다. 친구인 산골소녀 미자(안서현)와 애틋한 감정연기를 선보인다. [사진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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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봉 감독과 첫 만남은 어땠나.
A :
Q : '기생충'은 ‘옥자’ 시사 때 제안을 받았다고.
A :
영화 '기생충'에서 문광이 박사장네에 과외면접을 보러 온 기우(최우식)을 맞는 첫 등장 장면. 사모님으로 오해 받을 만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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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의 과외 모습을 안주인처럼 챙기는 문광. 비극이 닥친 뒤엔 180도 다르게 변모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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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 인터폰 장면이 첫 촬영이었다고.
A :
지난달 칸영화제 초청 당시 '기생충' 여성 배우들의 한컷. 이정은은 "여성 배우들이 많아 서로간의 케미, 기싸움을 신나게 즐겼다"고 돌이켰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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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문광은 어쩌다 남편을 4년 넘게 숨어 살게 했을까.
A :
Q : 남편 근세를 연기한 박명훈은 오랜 동료라고.
A :
독립영화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박명훈은 봉 감독이 박석영 감독의 ‘재꽃’을 보고 “술 취한 연기는 세계 최고”라며 캐스팅한 배우. '기생충'에서 부부의 실체, 특히 남편 근세는 존재 자체가 스포일러라서 박명훈은 개봉 전 공식행사에 한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정은도 개봉 10여일이 지나서야 인터뷰에 나섰다. “명훈씨가 칸까지 가서 레드카펫도 못 서고 공식상영도 2층 객석에서 따로 봐서 안타까웠어요. 근데 얼마 전 무대인사 갔더니 명훈씨한테 ‘리스펙!’ 하는 극중 대사가 쏟아지고. 아이돌급 인기를 실감했죠.”
문광에게 비극의 기운이 닥쳐오는 장면. 극중 그의 복숭아 알레르기 설정은 봉 감독이 자신의 학창시절 친구 경험담에서 따온 것. [사진 CJ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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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처럼 벽에 달라붙는 독특한 몸놀림은 액션스쿨에서 훈련받아 와이어를 매달고 소화했다. 계단을 굴러떨어질 땐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 스턴트를 맡았던 유미진 등 남녀 대역 2명이 동원됐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이정은이 노쇠한 혜자(김혜자)와 마주한 모습. [사진 네이버웹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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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눈이 부시게’의 열연에 감탄을 표하자 그는 겸손 또 겸손했다. “제가 결혼을 안 했다 보니까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는 부부의 그 건조함을 표현하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럴 때 김혜자 선생님을 뵈면 제가 뭘 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주신 걸 받기만 해도 그게 연기가 됐어요.”
OCN 새 시리즈 '타인은 지옥이다' 원작 웹툰. 맨 왼쪽이 이정은이 연기할 고시원 주인이다. [사진 네이버웹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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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이 있어도 일을 다 끝내고 요구사항을 전달하죠. ‘리허설배우’란 별명도, 연습할 때도 동료들이 실감 나게 하도록 실전처럼 맞춰주다 보니 생겼어요. 저희는 인생의 많은 부분을 현장에서 보내잖아요. 고인이 되신 김영애 선생님이나 여러 선배님을 보며 배웠어요.”
2015년 박보영 주연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에서 처녀귀신을 알아보는 서빙고 보살 역으로 주목받은 이정은. [사진 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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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다닐 땐 거의 연극 연출만 했다는 그다. “어머니도 배우상은 아닌 것 같다시고,(웃음) 근데 제가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거 좋아했거든요. 점점 나설 기회가 없으니 쭈그렁탱이가 되는 거예요. 박광정 오빠가 대학로 연극연출하는데 도와달라기에, 제가 연출부로 세 작품 하면 무대에 배우로 세워 달라 딜을 했죠.” 그렇게 따낸 출연작이 1994년 외계소녀의 서울 유랑기 ‘저 별이 위험하다’. 이 연극에서 그는 인신매매범 역할로 맘껏 웃음을 터뜨렸다. 첫 연기 데뷔작은 대학생이던 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이지만, 대학로에서 정식으로 배우활동을 한 건 이때부터다.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더 먼저 배운 것 같아요. 어떤 역이 오더라도 즐겁게 하며 버텨왔고, 아니, 버틴다기보단 내가 봐도 좋은 이야기에 일조하는 게 재밌었어요. 작품은 전적으로 작가와 감독의 역량이거든요. 이번에 저보고 연기 잘했다고 하시는데 이미 그렇게 두드러질 수 있는 역이었어요. 우리(배우)는 거기에 몇 프로 창조성을 더할 뿐이에요.”
“저는 주윤발이 되고 싶어요.” 그가 뜻밖의 이름을 꺼냈다. “그분처럼 평범하게 노후에 지하철 타고 일반 대중 속에 있고, 그런 모습이 좋아요. 남주혁씨(‘눈이 부시게’)처럼 팬이 막 몰려드는 정도 말고, 길 가다가 ‘아유, 어디서 봤어, 같이 사진이나 찍어’ ‘먹구 가’ 하는 정도의 인기라면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 '기생충' 제작진이 22일 제72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갈라 상영 후 기립박수를 받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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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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