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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중동까지 보폭 넓힌 아베…이란 방문일에 일본 유조선 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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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 만의 일본 총리 방문…이란 대통령 만나

“무슨 일 있어도 무력충돌 피해야” 자제 권고

35년 전 이란-이라크전 중재 아버지 따라 방문

아베 방문 중 일본 유조선 오만만에서 피격

이란 “우호적 대화 도중” ‘혐의’ 부인

아베, 북과 정상회담, 러시아와 평화조약도 추진

북·러한테는 면박만…가시적 성과는 못 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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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시정연설에서 ‘전후 외교 총결산’을 내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란을 방문해 이란과 미국의 갈등 중재에 나섰다. ‘국제정치 플레이어’로서 보폭 확대를 본격화한 상황이지만, 공교롭게도 그의 이란 방문 중 일본 유조선이 호르무즈해협 근처에서 피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교도통신>은 12일 아베 총리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무력 충돌은 피해야 한다. 중동의 평화와 안정은 이 지역과 세계의 번영을 위해 필수”라며 미국과 갈등 수위를 높이지 말라고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올해 이란과 수교 90돌을 맞은 일본 총리의 이란 방문은 41년 만이다.

두 정상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하겠다며, 2015년 이란 핵협정의 중요성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란이 중동에서 “건설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고,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과의 전쟁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도발에는 단호히 행동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13일에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만났다. 하메네이는 이 자리에서 “이란은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이미 핵협정과 관련해 미국과 쓴 경험을 했으며, 이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국제 외교·안보 현안에 앞장서려는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그는 지난달 28일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려는 호위함 ‘가가’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승선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함께 펼치는 ‘글로벌 군사동맹’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어진 이란 방문은 동아시아를 넘어선 지역의 갈등에서도 적극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일본으로서도 중동 석유에 경제를 의존하는 상황에서 무력 충돌은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이란산 석유의 주요 수입국이었지만 지금은 미국의 금수 조처를 따르고 있다.

미-이란 갈등을 절묘하게 이용하는 아베 총리의 외교술도 눈에 띈다. 그는 방일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 방문 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자에게도 전화로 이란 방문 계획을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일본과 관계가 괜찮은 이란은 그의 방문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베 총리는 1984년 외상이었던 아버지 아베 신타로가 이란-이라크전 해소를 중재한다며 이란을 방문했을 때 동행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이란을 방문 중이던 13일 오만만에서 일본 유조선이 피격당하는 당혹스런 상황이 발생했다. <로이터> 통신은 일본 업체가 운용하며 메탄올을 싣고 싱가포르로 향하던 ‘고쿠카 커레이저스호’가 피격당해 선원들이 배를 버렸다고 보도했다. 목격자들은 3시간에 걸쳐 2~3차례 폭발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이날 대만 선적 유조선도 어뢰 공격으로 추정되는 공격을 당했다. 두 배의 선원들은 한국의 현대상선 선박 등 주변을 지나는 상선들에 구조돼 이란 항구로 보내졌다. 일본 정부는 피격당한 선박 2척 모두 자국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는 일본과 우호적인 대화를 하는 도중에 발생한 사건은 배후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유조선 피격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아베 총리의 ‘전후 총결산 외교’는 결실을 보지 못하고 난기류를 만났다. 이번 공격을 누가, 왜 감행했는지를 두고 논란도 예상된다. 지난달에도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지난달에도 오만 근해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 2척이 공격받았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당시 이란을 배후로 지목했지만, 이란은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행보는 이렇다 할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마주앉고 싶다고 여러 번 밝혔지만, 북한은 이달 2일 “아베 패당의 낯가죽이 두텁기가 곰 발바닥 같다”고 반응했다. 또 쿠릴열도 남단 섬들을 돌려받고 평화조약을 맺으려고 러시아에 적극 구애를 했지만 “일본은 (미국 영향을 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나”(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라는 모욕적 말을 들었다. 일본 정부는 기대치를 낮추려는듯, 아베 총리의 행보는 “지역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차원이지 미-이란 갈등을 직접 중재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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