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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난민과 더불어 사는 이야기 꼭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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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우리 사회에서 난민은 '투명인간'입니다. 난민영화제(KOREFF)를 여는 이유는 난민들은 '이미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것이죠."

난민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수면 아래에 있던 난민 이슈가 지난해 500명 넘는 예멘인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면서 국민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난민 수용 여부를 둘러싸고 비판 여론이 들끓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난민 신청 허가 폐지'를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청와대 답변 필요 수인 20만명을 크게 넘어선 70만명에게 동의를 얻기도 했다.

난민 이슈가 현재 진행 중인 가운데 난민의 삶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자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15일 종로 서울극장에서 개막하는 '난민영화제'도 이 같은 일환이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공익법센터 어필(APIL) 사무실에서 만난 이일 난민인권네트워크 의장(38)은 15일 개막하는 국제 비경쟁 영화제인 '난민영화제'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군법무관 제대 후 인권 변호사를 꿈꾸던 그는 어필에 합류했다가 난민 문제를 접하게 됐고 난민 문제 전문 변호사가 됐다. 그는 유엔난민기구와 함께 난민영화제를 공동 주최하는 난민인권네트워크 의장도 역임하고 있다.

"'난민은 이미 존재하는 사회의 불안을 대리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난민은 사회 문제를 투영하기 좋은 대상이죠. 예멘 난민을 두고 일각에선 '난민이 우리나라 여성을 강간할지 모르니 위험하다'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몰래카메라 사건 등 여성이 안전하지 않다는 국민 인식이 난민에게 투영된 결과입니다. '우리 일자리를 뺏는다' '우리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른다' 등 비난은 난민에게 국내 문제에 대한 책임을 돌린 것이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으로 입국하려는 캐러밴을 비난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난민영화제는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6월 20일)을 기념해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사단법인 정, 대한적십자사, 세이브더칠드런 등 한국 난민인권단체들의 연대체인 난민인권네트워크와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연례행사로 올해 5회를 맞았다. 올해는 'I Hear You 당신이 들려요'를 주제로 영화 다섯 편이 관객을 만난다.

"올해 영화제의 주제인 '당신이 들려요'라는 말은 지난해 예멘 난민을 포함해 우리나라에 온 난민에게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이에요. 영화제를 통해 섣불리 '난민은 이런 사람들입니다'라고 정의 내리기보다는 난민이 스스로에 대해 하는 이야기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보자는 것이죠."

올해는 '레지스턴스 이즈 라이프(Resistance is Life·아포 W 바지디 감독)' '웰컴 투 저머니(Willkommen bei den Hartmanns·지멘 베르회벤 감독)'와 더불어 폴 우 감독의 '안식처' '경계에서' '호다' 등 총 다섯 작품이 상영된다.

"'레지스턴스 이즈 라이프'는 터키·시리아 국경 난민촌에 사는 8세 소녀 에블린이 고국을 위해 저항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시리아 사태를 다뤘죠.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독일인 가정에 초대된 나이지리아 출신 난민이 독일인 가족과 함께 살며 겪는 인종차별, 테러 의혹 등을 유쾌하게 풀어낸 '웰컴 투 저머니'도 주목할 만합니다. 폴 우 감독의 다큐 영화 세 편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 씨가 외국 난민캠프에서 만난 난민들 삶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난민영화제에선 단지 영화를 상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이 감독, 난민, 난민 인권운동가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GV(Guest Visit)'가 이어진다. 난민에 대해 관객들이 함께 고민해보고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지난해부터는 영화제 부대행사로 난민이 직접 참여하는 소규모 문화제도 같이 열리고 있다. 이 의장은 "난민 단체들과 더불어 난민들이 직접 출신국별로 부스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문화제는 지난해 처음 시작했는데 난민들이 관객과 어울리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의장은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국제 이슈에도 관심을 가지고 난민 목소리에 한 번이라도 귀를 기울여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난민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많지만 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이해하자는 목소리도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국내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 이슈에도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시리아, 수단 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안다면 국민이 그들이 어떻게 난민이 돼 우리나라에 왔는지 처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직 난민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래도 한번쯤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요."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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