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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책꽂이-마키아벨리, 군주론의 탄생]격변의 시대...지도자 미덕은 정의 아닌 국가 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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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군주론의 탄생

마일즈 J.웅거 지음, 미래의창 펴냄

"군주는 善보다 역량이 더 중요"

불편한 진실 예리하게 파헤쳐

구국 갈망한 마키아벨리 평전

美中간 '글로벌 패권 전쟁' 등

위기의 한국 현실에 반면교사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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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내용을 쓰고자 하기 때문에 꿈속에 머무는 것보다 사물의 실체적 진실에 곧장 다가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습니다.”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1469~1527)는 대표 저서 ‘군주론’에서 이처럼 공손한 말투로 집필 의도를 밝혔다. 마키아벨리 자신은 피렌체의 새로운 통치자인 메디치가에 일자리를 구하고자 일종의 지원서처럼 이 글을 쓴 것이었지만 바람이 현실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군주의 환심을 사려면 군주가 중시하거나 기뻐할 만한 것을 제시해야 하건만 그는 누구도 반기지 않을 불편한 진실과 노골적인 주장으로 가득 찬 ‘너무나 솔직하고 꾸밈없는’ 책을 썼기 때문이다.

피카소와 미켈란젤로 등의 평전으로 유명한 미국의 전기 작가가 마키아벨리를 파고 들었다. 저자는 왜 그가 ‘군주론’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한다.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여러 역작들을 되짚으며 그가 뒤집어 쓴 교활한 정치꾼이자 부정직한 모사꾼이라는 ‘누명같은 악명’에 대해 변호한다.

마키아벨리의 간절한 꿈은 무너져가는 피렌체 공화국이 다시 번성하는 것, 오로지 그뿐이었다. 부유했던 피렌체는 프랑스의 침공으로 이탈리아가 쑥대밭이 되면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피렌체는 국민국가로 똘똘 뭉친 강국 프랑스와 교황의 권력이 절대적인 교황령이 양쪽에서 압박하고, 스페인왕국과 신성로마제국 같은 주변국이 세력을 키워가는 틈바구니에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무역전쟁이라는 외피 아래 글로벌 패권을 두고 격돌하면서 시험대에 오른 현재의 우리나라와 흡사했다.

즉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하면서 떠올린 이상적인 통치자는 평화의 시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의 고난기를 헤치고 나가야 했기에 때로는 섬뜩해야 했다. 마키아벨리가 판단한, 그의 조국이 처한 현실이 처참한 것에 비례해 그는 초인적 의지력을 갖고 때론 교활하고 무자비한 활동가를 상정했다.

“현명한 군주라면 상황이 불리하게 바뀔 때, 그리고 자기가 내건 약속의 근거가 흔들리는 경우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마키아벨리는 신중한 속임수까지 장려했다. 여기다 “모든 사람들이 선하다면 이 교훈은 쓸모없겠지만, 어차피 상대방이 사악하고 신의를 지키지 않을 것이므로 굳이 그들과의 신의를 지킬 필요없다”고도 덧붙였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독설과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그가 부르짖은 것은 ‘야만인들의 손아귀에서 이탈리아를 구하기 위한 호소’였다.

마키아벨리는 변덕스런 운명의 여신인 ‘포르투나’에 맞서는 인간적 기질을 ‘비르투(virtu)’라 적었다. 학자들이 같은 어원의 영단어 ‘미덕(virtue)’과 혼동해 해석이 분분한 표현이다. 저자는 이를 “미덕이 아니라 역량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의 관점에서 비르투는 혼란 상태의 영향력에 맞서는 질서를 상징한다”고도 덧붙인다. 적어도 군주라면 선량함보다 ‘역량’을 갖추는 게 더 큰 미덕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마키아벨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원칙과 종종 같이 거론되는 인물이지만 정작 그가 쓴 글 어디에도 그런 표현은 없다. 그나마 ‘로마사 논고’에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은 결과에 의해 정당화될 수도 있다는, 또 어떤 행동의 결과가 좋을 때 결과는 언제나 그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말은 옳다”고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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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신민들의 충성과 단결을 유지하고자 할 때 잔인하다는 평가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어떤 나라의 안전이 향후의 결정에 달려 있다면 그 결정이 정의로운지 아닌지, 친절한지 아닌지, 명예로운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택에 있어 다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라를 구하고 자유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고도 강조했다. 강대국 열강들의 알력 싸움에 500년 전 피렌체 못지않은 격변의 난세를 살고 있는지라 ‘군주론’은 새삼스럼게 다시 읽힌다.

익히 알려졌듯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가 글을 쓰며 염두에 두었던 줄리아노 데 메디치는 우리에게 석고상 ‘줄리앙’으로도 친숙한 인물이다. 줄리아노는 마키아벨리가 생각한 ‘무자비한 지도자와 거리가 먼 상냥하고 고상한 신사’였으며 프랑스군이 퍼트린 매독에 걸리고 말았다. 마키아벨리는 고민 끝에 용기를 내 교황의 조카인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군주론’을 바쳤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통일이라는 마키아벨리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열렬한 애국자였기에 예리하게 통찰했지만 과도하게 솔직했다. 1만9,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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