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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수백㎞ 달려 지방에 가도… 의료폐기물 소각장 꽉 차 '밤샘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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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되는 의료폐기물] [下]

의료폐기물 배출 年 1만t 느는데 처리업체 수 5년째 14곳 그대로

11일 오후 10시쯤 충남 천안 산업단지에 있는 의료 폐기물 소각장. 늦은 시간이라 주변 공장들은 조용했지만 이곳은 24시간 불을 땐다. 한 직원이 의료 폐기물 트럭에 담긴 박스를 쉴 새 없이 소각로로 옮겼다. 이렇게 심야까지 소각로를 돌려도, 소각장 인근 도로엔 아직 못 태운 의료 폐기물을 실은 흰색 트럭이 20대 넘게 줄 서 있었다. 서울·경기도·인천 등 수도권에서 의료 폐기물을 싣고 100㎞ 넘게 달려온 차량들이다. "진작 도착했지만, 소각장이 꽉 차서 폐기물 내려놓을 공간이 날 때까지 대기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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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작업하는 의료폐기물 처리업체 - 지난 11일 밤 10시쯤 충남 천안의 한 의료 폐기물 소각 업체에서 직원이 폐기물 박스를 옮기고 있다. 서울에 있는 종합 병원 두 곳이 매달 600t이 넘는 폐기물을 이 업체로 보낸다. /손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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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의료 폐기물 배출량은 2015년 이후 매년 1만t씩 증가하고 있지만, 의료 폐기물 소각 업체의 수는 5년째 14곳으로 고정돼 있다. 이 업체들의 소각 처리 용량도 그간 18만9000t에서 더 늘지 않았다.

전국 광역단체 중 의료 폐기물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지역은 서울(5만3152t)이다. 2위 경기도(3만9365t)의 1.5배, 17위 세종시(260t)의 200배에 달하지만, 서울 시내엔 의료 폐기물 소각 처리장이 한 곳도 없어 서울 병원에서 나온 의료 폐기물은 수백㎞ 떨어진 지방으로 실어 날라야 한다. 다른 대도시도 엇비슷하다. 부산대병원과 전남대병원은 각각 125㎞, 200㎞씩 떨어진 경북 고령 소각장으로 의료 폐기물을 보내고 있다.

◇서울, 폐기물 가장 많은데 소각장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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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선진국은 대부분 의료 폐기물이 발생 권역 내에서 처리되도록 제한한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의료 폐기물을 발생시킨 주에서 처리한다. 텍사스 등 일부 지역은 다른 주에서 발생한 의료 폐기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법까지 만들었다. 유럽연합도 가능한 한 발생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폐기물을 처리하도록 한다. 일본은 감염 위험이 있는 폐기물을 분류해 의료 관계기관 등의 시설 내에 있는 소각 시설을 이용토록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료 폐기물의 이동 거리에 대한 제한이 없다. 의료 폐기물 소각 처리 시설이 14곳뿐이라, 권역별로 처리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봐야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의료 폐기물의 장거리 이동을 금지하고 권역별로 나눠 이동을 최소화하자'는 내용의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갔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묻혔다.

◇선진국은 일반쓰레기로 처리하기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반폐기물 처리 업체도 정부의 관리·감독하에 의료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일본, 미국 등에서는 의료 폐기물을 생활 쓰레기나 산업폐기물로 태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료 폐기물은 허가를 받은 의료 폐기물 전문 처리 업체에서만 소각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 폐기물과 일반 생활 쓰레기를 반드시 별도의 시설에서 태우도록 규정한 현재의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그런 주장을 알고는 있지만, 의료 폐기물 처리 업체들이 '밥그릇 뺏는다'고 반발할 우려가 있어 (정부가 밀어붙이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김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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