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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어른을 위한 슬픈 우화…영화 '행복한 라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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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행복한 라짜로'
[슈아픽처스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오는 20일 개봉하는 '행복한 라짜로'는 성경에서 많은 부분을 빌려온, 우화 또는 동화 같은 영화다.

외부와 단절된 이탈리아의 한 마을 인비올레타. 이곳에서는 50여명의 소작농이 알폰시나 후작 부인의 담배 농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전기조차 제대로 쓸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도 가지 못한다. 이들은 소작제가 금지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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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라짜로'
[슈아픽처스 제공]



이들 중 순수한 청년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 분)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라짜로에게 궂은일을 시킨다. 후작 부인은 마을 사람들을 착취하고, 마을 사람들은 다시 라짜로에게 똑같은 짓을 하는 구조가 형성돼있다. 그러나 라짜로는 불평은커녕 항상 웃는 얼굴로 모든 요구를 들어준다. 착함을 넘어 바보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후작 부인의 아들 탄크레디(루카 치코바니)가 요양을 위해 마을을 찾아온다.

라짜로가 마음에 든 탄크레디는 가짜 납치극을 꾸며 마을을 벗어나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라짜로의 도움을 요청한다. 라짜로가 열병을 앓는 사이 납치 신고를 받고 온 경찰에 의해 후작 부인이 마을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렸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마을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 뿔뿔이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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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라짜로'
[슈아픽처스 제공]



상영시간이 두시간 조금 넘는 이 영화는 절반 지점에서 내용이 전환된다. 약간은 지루한 처음 절반은 인비올레타를 배경으로 그려지고 나머지 절반은 대도시가 배경이다. 절반 지점에서 라짜로에게도 역시 큰 사건이 닥친다. 후반부에서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통해 내용이 전개된다.

초반의 소작농들만 보면 시대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이들은 현대의 첨단 문명과 동떨어져 있다. 전구가 없어서 하나를 가지고 여러 명이 돌려쓴다. 수백 년 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러다 탄크레디가 나타나면서 휴대전화가 등장한다. 시간 여행을 하는 기이한 느낌을 준다. 그러다 후반부에는 실제로 시간이 수십 년 흐른 뒤의 일이 그려진다.

라짜로의 이름은 성경의 나사로에서 가져왔다.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묻힌 지 나흘 만에 예수는 그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영화 속 여러 은유는 라짜로가 나사로인지 아니면 예수인지 모호하게 만든다.

'행복한 라짜로'라는 제목은 영화의 내용을 드러내는 동시에 반어적이다. 라짜로를 둘러싼 상황은 불행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맑은 눈망울을 빛내며 웃는다. 마을 사람들도 후작 부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지만,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현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대도시는 후작 부인만큼이나 매정하다. 그때와 마찬가지거나 더욱 살기 힘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영화 속 현실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는 과연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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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라짜로'
[슈아픽처스 제공]



라짜로를 연기한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의 순수한 얼굴이 화룡점정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의 순수한 표정만이 뇌리에 남을 정도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었던 1998년생의 이 배우는 1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됐다. 타르디올로 외에 다른 배우들도 대부분 신인이다.

후작 부인을 연기한 니콜레타 브라시는 한국 관객에게는 비교적 낯익은 배우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부인이자 '인생은 아름다워'의 도라 역으로 잘 알려진 그를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 반갑다.

연출을 맡은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은 이 영화로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올해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황금종려상 수상자로 영화 '기생충'과 봉 감독을 부를 때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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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라짜로'
[슈아픽처스 제공]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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