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2 (목)

7년 유예 ‘강사법’ 8월 시행…처우개선 담았으나 문제는 ‘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고려대 총학생회와 전국대학강사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2월 서울 고려대 본관 앞에서 개설 과목 수 급감 해결 및 강사법의 온전한 실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0년 5월 조선대 시간강사였던 고 서정민씨가 “한국의 대학이 원망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10년째 시간강사로 일했던 그는 교수와 그 제자들의 논문 업적을 위해 50여편의 논문을 썼으며, ‘교수직을 원하면 거액을 달라’는 요구까지 받았다는 폭로도 남겼다. 주 10시간 강의에 33만원 남짓의 ‘주급’으론 가정을 꾸려가기도 힘들었다. 서씨의 사망 이후 열악한 시간강사의 고용과 처우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었다. 이른바 ‘강사법’으로 불리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이듬해 발의됐고, 국회에서 통과됐다.

하지만 강사법은 곧바로 시행되지 못했다. 시간강사 문제는 기본적으로 비정규직 문제이기도 하다. 대학들은 강사법에 대해 “비용이 든다”며 반발했고, 당시 이명박 정부와 이후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없다시피했다. 그렇게 강사법은 4차례에 걸쳐 시행이 유예됐고, 7년간 표류했다.

전례 없는 긴 유예기간을 거친 강사법이 드디어 올 8월부터 시행된다. 유예기간 중 강사법은 손질을 거듭했고, 문재인 정부는 강사 대표와 대학 대표, 교육부 등이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만들어 최종 법안과 시행령을 확정했다. 숱한 논란 끝에 시행되는 강사법은 7만~8만명에 달하는 강사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이제 ‘공’은 강사들을 직접 고용하는 사용자 측인 대학에 넘어갔다.

■ 강사 신분안정 및 처우개선에 ‘방점’

임의 고용 해고 금지· 3년 재임용 보장· 주 6시간 강의 등 골자

겸임·초빙교원 고용 자격 강화로 대학의 ‘꼼수’도 차단


16일 올 8월 시행예정인 강사법과 관련 시행령 등을 보면 우선 대학이 마음대로 강사를 고용·해고할 수 없게 했다.

대학의 ‘교원’ 지위에 강사를 포함해 강사들의 소청심사청구권, 본인 의사에 반한 휴·면직 금지 규칙 등이 적용된다. 강사를 고용할 때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 고용 계약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임용기준과 절차, 임용기간, 임금 등 근무조건을 명시한 서면계약으로 해야 한다. 처음 임용 시 임용기간은 1년 이상으로 하되, 3년까지는 재임용을 보장해야 한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 강단에 서길 희망하는 신진 학자들을 위해 국·공립대에서는 강사 임용 시 박사학위 신규 취득자 등 ‘학문후속세대’를 대상으로 자격을 제한해 고용할 수 있게 했다. 강사가 담당하는 강의시간도 매 학년도 30주를 기준으로 ‘매주 6시간 이하’를 원칙으로 뒀다. 강사들에 대한 ‘노예 계약’을 막기 위한 조치다. 다만 대학이 필요할 경우 매주 최대 9시간까지는 강사가 강의를 맡을 수 있다.

방학 중에도 강사에게 임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방학 중 임금을 얼마로 할지는 대학과의 임용계약으로 정하게 된다. 교육부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제시한 평균 수준은 연간 4주(약 70만원) 수준이다. 강의 시간 등에 맞춰 강사가 퇴임할 경우 퇴직금도 지급하도록 명시했다.

강사법이 2011년 처음 통과된 뒤 유예되는 동안 대학들은 꾸준히 강사 수를 줄여왔다. 2011년 집계에서 11만2000명이던 시간강사는 지난해 7만5329명까지 줄었다. 같은 기간 재학생이 16만명가량 줄어든 여파도 있었지만 강사법 시행에 대비해 대학이 미리 비용절감에 나선 탓이다. 대학들은 강사를 아예 해고하거나 겸임·초빙교원 등으로 신분을 전환하는 방법을 썼다. 이에 오는 8월부터 시행되는 강사법에서는 겸임·초빙교원 등을 고용할 때 자격요건, 고용사유 등의 규정을 강화해 대학들이 이 같은 편법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대학들 “2700억원 필요” 주장

대학들, 연 2700억원 추가경비 발생…등록금 인상 불가피 주장

교육부는 ‘인상 불가·대학평가에 이행 수준 반영’ 대학 압박


다른 비정규직 문제와 마찬가지로 강사법 시행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 추가 비용 문제다. 사립대학들은 강사들에게 방학 중 임금, 건강보험료, 퇴직금 등을 지급하려면 연간 2700억원가량의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강사법 시행에 따른 추가 비용을 마련하려면 수년간 동결되다시피한 대학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반면 교육부가 강사법 시행을 준비하며 마련한 지원금은 현재까지 568억원 규모다. 이 중 288억원이 올 2학기 강사들의 방학 중 임금 지원 예산으로 투입된다. 280억원은 강사법 시행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강사들을 위한 일시 지원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파악한 결과 사립대들이 주장하는 금액만큼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강사법을 이유로 한 등록금 인상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은혜 장관도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강사법 문제로 등록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현재로선 추가 비용 문제에 있어 누구 말이 맞는지 단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사립대의 비용 추계에선 일부 오류가 있다. 건강보험료의 경우 강사들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에 해당할 경우 대학 측에서도 보험료 일부를 부담하게 된다. 현행 건보 규정상 비상근 교직원이나 1개월간 소정근로시간이 60시간 미만인 시간제공무원·교직원은 직장가입자 대상이 아니다. 강사법에서는 강사의 강의시간을 주당 최대 9시간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산술적으로 봤을 때 강사들이 한 달간 60시간의 근로시간을 채우기 쉽지 않다. 다만 강사의 경우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까지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례가 있어 소정근로시간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퇴직금 문제도 이와 비슷하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서는 ‘계속근로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4주간을 평균해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는 퇴직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교육부는 “강사 퇴직금 문제는 사실 강사법 시행으로 새로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대학의 부담 경감을 위해 퇴직금에 대한 예산 확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현재 마련해둔 지원금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고 강사를 위해 마련한 280억원은 강사 2000명에게 1년간 1400만원씩 지원하게 된다. 강태경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수석지부장은 “강사법으로 해고되는 강사가 2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현재 예산은 이들의 10%에 해당하는 강사만 지원할 수 있는 금액에 불과하다”며 “이미 추경도 끝나 추가 예산확보가 어려운 만큼 대학이 강좌를 얼마나 늘려주느냐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됐다”고 밝혔다. 방학 중 임금 지원용으로 마련한 288억원도 교육부는 “내년에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제도가 시행되면서 비용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교육부가 충분한 금액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지원 예산이 적다는 지적을 의식해 교육부도 다른 교육 예산을 강사 인건비로 쓸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뒀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 및 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의 경우 대학별 ‘사업계획서’에 포함된 강좌라면 신규 채용 강사의 인건비로 집행할 수 있게 했다”며 “강사를 포함한 비전임교원의 공개임용제도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도 대학 및 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의 사업비에서 활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 ‘힘’으로 누르는 교육부, 대학이 관건

정부는 제도 안착 밀어붙이기…세부 내용 놓고 부작용 우려도

강사법 시행 과정에 대학도 참여해서 논의했지만 가뜩이나 재정난을 호소하는 대학들이 강사법을 반길 리가 없다. 시민단체들이 강사법 본격 시행으로 인한 대규모 강사 해고 우려를 내놓는 이유다. 교육부가 조사한 결과 올 상반기에도 이미 1만개가량의 강사 자리가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교육부는 대학들이 강사 해고에 나설 수 없도록 일단 각종 대학 평가 항목에 강사 고용현황 지표를 반영할 계획이다. 강사법을 잘 시행하는 대학일수록 예산지원을 더 원활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가장 기본적인 대학평가인 ‘대학 기본역량 진단 지표’에 강사 현황이 반영되고, BK21 등과 같은 굵직한 국책과제를 선정할 때도 강사 지표가 반영된다.

교육부는 “법 시행을 앞두고 이달 초부터 이미 강사 고용현황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며 “올 1학기에 미리 강사 수를 줄이거나, 총 과목 수를 축소한 대학이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올 2학기 강사 고용현황을 지난해 2학기 또는 그 이전 학기와 비교해 지표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립대학 대부분이 재단의 투자보다는 학생들의 등록금과 정부의 지원금에 의존해 학교를 운영하는 상황에서 교육부의 평가 방침을 거스를 수 있는 대학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한 사립대학 관계자는 “강사법 시행에 대학들은 불만이 많지만 드러내놓고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은 교육부가 ‘힘’으로 제도 안착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강사법의 세부 내용을 놓고 여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겸임·초빙교원의 경우 대학이 수준 높은 세계 석학 등을 고용해 학생들에게 양질의 강의를 제공하는 주요 통로로 활용된다”며 “하지만 강사법 시행으로 겸임·초빙교원마저 공개채용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어떤 석학들이 공개채용 과정을 거쳐 학교에 오려고 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퇴직금이나 건보료 문제만 해도 향후 강사노조가 대학과 교섭에 나설 경우 교섭결렬 등을 이유로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