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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박정희 정권 무너져야 한다”고 말했다가 유죄…긴급조치 9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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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9호, 유신정권 비방만으로 1년 이상 징역형에 자격정지 부과 / 2013년 헌재,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 결정 / '박정희 비판' 농민, 사후 27년 만에 재심서 무죄 선고

세계일보

박정희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은 남성이 43년 만에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남성은 사후 27년 만에 검찰의 과거사 반성에 따른 재심청구로 죄를 벗게 됐다. 당시 대통령긴급조치 9호는 유신정권을 비방했다는 이유만으로 1년 이상 징역형에 자격정지를 부과할 수 있는 무거운 법이었다. 2013년 헌재가 긴급조치 9호에 대한 위헌을 결정하자 검찰은 과거사 반성 차원에서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구제에 나서고 있다.

◆ “박 정권 무너져야 한다”고 말했다가 집유 5년, 자격정지 3년

광주고법 형사1부(고법판사 김태호)는 16일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기소된 백모(1992년 사망 당시 63세)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농민이었던 백씨는 병충해 피해가 발생하자 1975년 9월 21일 오후 10시 30분쯤 전북 옥구군 옥구면 양수장 앞에서 양수장 기사 등 주민 5명에게 “논에 나락이 다 죽어도 박정희나 농림부 장관이 한 게 뭐냐. 박정희 잘한 게 뭐 있느냐. 박 정권은 무너져야 한다”고 말한 혐의로 기소됐다. 1975년 당시 선포된 긴급조치 9호에 따라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비방, 청원, 선동, 보도하는 행위는 일체 금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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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정권 시절 대통령 긴급조치 선포 소속을 알린 일간지(동아일보) 1974년 1월9일자 1면


백씨는 1976년 2월20일 1심인 전주지법 군산지원에서 유신헌법 제53조에 따른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3년 및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백씨는 즉시 항소했고 같은해 6월 광주고법은 원심의 형이 과중하다는 이유로 백씨에게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 형이 확정됐다. 검찰은 2017년 10월26일 과거사 반성 차원에서 광주고법에 백씨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재판부는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해 공소가 제기된 사건”이라며 “백씨에 대한 공소사실은 형사소송법이 정한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않는 때’에 해당한다”고 백씨의 무죄를 선고했다.

◆ 2017년부터 긴급조치 피해구제 나선 검찰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17일 안보위기를 명목으로 장기집권 가능성을 열어둔 이른바 10월 유신을 단행했다. 그해 11월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를 통과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르자 정부는 1974년 1월8일 국민들의 유신헌법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을 일체 금지한 긴급조치 1호를 발령했다. 긴급조치는 1975년 5월 선포된 9호까지 이어졌다. 단순 정권비방을 했다는 이유로 영장 없이 체포돼 유죄 판결이 나오는 등 긴급조치 9호는 전국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법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긴급조치는 1975년 12월8일까지 발동됐는데 그동안 관련 판결은 1289건, 피해자 수는 974명에 달했다. 38년이 지난 2013년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1호, 2호, 9호에 대해 “헌법상 보장된 국민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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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2월27일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유신헌법을 공포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검찰은 2017년 문무일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라 과거사 반성 차원에서 유신정권시절 긴급조치 피해자들을 상대로 재심을 통한 구제에 나서고 있다. 1970년대 경기도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 사회과목 교사로 일한 이모(90)씨는 1976년 8월 수업 도중 “한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터지면 북한이 이길 것”이라는 말을 했다며 긴급조치 9호 위반 등 혐의로 유죄가 선고됐지만 최근 무죄가 인정됐다. 검찰은 지난해 3월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긴급조치 9호는 당초부터 위헌 무효”라며 이씨의 무죄를 선고했다.

공장에서 일하던 A(2013년 사망당시 75세)씨도 1976년 전북 군산에서 “대통령 선거에 혼자 나와서 혼자 당선되는 것이 무슨 선거냐”, “전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을 당시 돈을 많이 벌어 선거 때 박정희 대통령에게 자금을 댔다. 다음 대통령 선거도 틀림없이 박정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2017년 11월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도 1977년 서울대 재학시절 유신 반대시위에 가담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2017년 10월 직접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지난해 8월 김 전 장관에게 무죄를 선고해 40년 만에 오명을 벗게 됐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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