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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저출산이 만든 빈교실, 학생 아이디어로 공작소·쉼터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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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10년간 빈교실 6만개 늘어… '교실혁신' 나선 光州 마지초교 가보니

"자, 내가 원목 상판을 잡고 있을 테니 네가 여기에 나사를 박아봐."

지난 11일 오전 광주광역시 마지초등학교의 실과(實科) 시간. 6학년 학생 20여명이 고글을 쓴 채 전동드릴로 나무판에 나사를 박았다. 교실 가득 '드르륵' 소리가 요란했다. 아이들은 "컴퓨터 모니터를 올려놓을 수 있는 거치대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교실 뒤편에 망치·스패너·펜치·톱 같은 공구가 가득했다. 이 교실 이름은 '엉뚱공작소'. 이곳엔 칠판을 향해 도열한 책걸상도, 아이들 이름표가 붙은 사물함도 없다. 6인용 작업대 다섯 개, 목재와 전선이 가득한 수납장이 책걸상을 대신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소품이나 가구를 만들 수 있는 공작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내서 지난해 마련한 공간이다. 광주시교육청에서 시작한 '학교 공간 혁신 프로젝트'의 일부다.

남는 교실 어떻게 이용할까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학령기 아이들이 줄면서 남는 교실을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있다. 작년에 광주 지역 초·중·고 10곳에서 시범 실시했다. 학교당 5000만원씩 예산을 지원했다. 어른 마음대로 재구성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회의와 토론을 통해 일을 진행하는 게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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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마지초등학교에 있는‘엉뚱공작소’에서 학생들이 전동 드릴로 나무판에 나사를 박아가며 컴퓨터 모니터 받침대를 만들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학생이 줄어 남는 교실을 공작실, 공연실 등으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을 진행해왔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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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공작소도 이렇게 탄생했다. 엉뚱공작소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무도 안 쓰는 먼지 쌓인 실과실이었다. 아이들이 이 공간을 자기 손으로 직접 바꿔보겠다며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전문 시공 업체에 맡기면 2~3개월이면 끝났을 공사가 아이들 손을 일일이 거치니 꼬박 1년이 걸렸다. 같은 과정을 거쳐 낡은 음악실도 상추 등 채소를 기르는 쉼터가 됐다.

6학년 김선빈(12)군은 "친구들과 직접 꾸민 공간이라 수업이 끝나도 자꾸 오게 된다"고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김군은 맞벌이 부모가 퇴근하기 전까지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올해부턴 매일 '엉뚱공작소'에 들르고 있다. "예전엔 집에서 혼자 TV를 봤는데 요즘은 학교에 남아 풍력자동차를 만들어요. 친구들과 함께 꾸민 교실이라 좋아요."

김황 마지초 교육혁신기획부장은 "아이가 엉뚱공작소에서 가구를 만든 뒤 '목수가 돼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뿌듯했다"고 했다.

앞으로 10년간 6만개 교실이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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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교육청이 이런 실험을 할 수 있는 건 역설적이지만 저출산 덕분이다. 교육부는 한 달에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유휴 교실'이 2017년 기준 전국에 1727개 있다고 집계했다. 초등학교 교실 934개, 중·고등학교 793개다.

11일 점심시간 광주광역시 첨단고등학교 1층 공연실에 학생들이 하나둘 모였다. 아이들은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며 수다를 떨었다. 이 공간은 원래 탁구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체력단련실이었지만, 학생들이 토론 끝에 '공연실이 필요하다'며 공연실로 바꿨다. 학생들이 미술 시간에 벽화 아이디어를 내고, 기술 시간에 교실 모형을 만들었다. 건축 동아리 학생들이 직접 가구와 조명을 설치하고 벽에 페인트를 칠했다. 수년간 방치돼 있던 가사실과 창고, 체력단련실이 각각 공유 주방과 학생 회의실·공연실로 탈바꿈했다. 수업이 끝나면 썰물처럼 학교를 빠져나가던 학생들이 요즘은 이곳에서 생일 파티를 하거나 삼겹살을 구워먹는다.

빈 교실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통계청은 최악의 경우 10년 안에 전국 초등학생이 120만명 감소할 것으로 본다(2019년 285만명→2029년 165만명). 같은 기간 중학생은 133만명에서 123만명으로, 고등학생은 153만명에서 134만명으로 줄어든다. 그러면 초등학교 교실 4만8000개, 중·고등학교 교실 1만1600개 등 교실 약 6만개가 남아돌게 된다. 매년 교실 약 6000개가 공실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광주시교육청의 실험에 대해 "빈 교실을 교육 수혜자인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했다. 교육부는 남는 교실을 활용하는 실험을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하고, 전국 150개교에 600억원을 지원해 광주 학교들과 비슷한 교실들을 만들기로 했다.

[광주광역시=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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