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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스물세 개의 활, 北歐의 심장을 파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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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챔버 오케스트라' 내년 창단 55년 맞는 실내악단… 핀란드 난탈리 음악축제 초청돼

557년 역사 품은 대성당서 연주… 해외 초청 공연 '137회' 신기록

첫 곡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 D장조를 듣는 순간 이 스물세 개의 활이 어떻게 한국을 뛰어넘어 유럽 클래식의 심장을 파고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핀란드인이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랄프 고토니(73)가 지휘에 피아노 연주까지 맡아 좌석은 일찌감치 동났다. 557년 역사를 품은 대성당의 하얗게 회칠한 벽은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가 쏟아내는 현의 노래로 천연의 울림을 자아냈고, 격자무늬 유리창을 통해 끝없이 밀려드는 백야(白夜)의 빛은 십자가상과 맞물려 중세의 분위기를 풍겼다. 내년 창단 55주년을 맞는 KCO는 한국 클래식의 저력을 세계에 전하는 '실내악의 외교사절단'. 국내에선 드물게 자생적으로 뿌리 내린 민간 실내악단으로, 1999년 파리 유네스코회관과 2000년 뉴욕 유엔 본부 공연을 통해 유엔이 공식 지정한 '평화의 실내악단'이 됐다.

지난 14일 저녁(현지 시각) 핀란드 서부의 휴양 도시 난탈리에서 열린 '제40회 난탈리 음악 축제'의 주인공 또한 KCO였다. 난탈리는 인구 2만의 작은 마을이지만 동화작가 토베 얀손이 창조한 '무민'의 고향이자 대통령의 여름 별장이 있어 '핀란드의 여름 수도'라 불린다. 1980년 핀란드 출신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77)가 1462년 지어진 난탈리 대성당을 주요 공연장으로 축제를 창설했다. 이후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과 아네조피 무터,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와 그리고리 소콜로프 등 500여 명의 연주자, 100여 개의 실내악 단체가 참석해 유럽 정상급 페스티벌이 열리는 '음악 도시'가 됐다.

조선일보

지난 14일 저녁 핀란드 난탈리 대성당에서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가 지휘자 랄프 고토니와 함께 하이든 피아노 협주곡 D장조를 연주하고 있다.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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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네 번째 초청받은 KCO는 이날 하이든에 이어 핀란드 작곡가 아울리스 살리넨(84)의 '바이올린, 하프와 현악을 위한 챔버 뮤직 10번'을 세계 초연하면서 핀란드 청중의 마음을 겨눴다. 맑게 미끄러지는 바이올린과 영롱한 하프로 그려낸 작품은 기립 박수를 끌어냈다.

이날 공연으로 KCO는 국내 클래식 연주 단체로는 최초로 '해외 초청 연주 137회'라는 기록을 세웠다. 1987년 6월 일본 도쿄 연주회를 시작으로 32년간 4개 대륙, 25개 나라, 95개 도시를 누볐으니 그간의 이동 거리만 61만4898㎞. 뉴욕 카네기홀부터 말레이시아 쿠칭의 원시림까지 전 세계 안 가본 데가 없다. 50주년에는 런던 퀸 엘리자베스홀을 시작으로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모스크바음악원 대극장, 빈 무지크페라인 등 유럽 최고의 무대를 차례로 밟았다. 한 마을에 여섯 가구가 전부인 크로아티아 루베니차의 산꼭대기에서 해 질 녘 펼친 연주, 미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66)가 내레이션을 하는 가운데 연주했던 슈니트케 피아노 협주곡도 빼놓을 수 없다.

KCO가 해외 초청 연주를 고집하는 건 '서양 음악의 모태(母胎)에서 냉정한 진검승부를 자처해 능력을 쉼 없이 점검하기 위해서'다. 1965년 창단 당시 음대 4학년생으로 악단에 합류한 음악감독 김민(77) 서울대 명예교수는 "투어를 다녀올 때마다 단원들 실력은 물론 악단의 응집력 역시 몰라보게 자란다"고 했다. 바이올린 수석 이재민(55)은 "막내 단원이 서른두 살로 김민 감독님과 반세기 차이 나지만 대부분 15년 넘게 호흡했기에 서로의 숨소리만 들어도 기분을 안다"고 했다.

2부에서 KCO가 들려준 드보르자크의 '세레나데'는 첫 음부터 청중을 숨죽이게 했다. 프랑스 명(名)플루티스트 파트리크 갈루아(63)가 "브라보"를 외쳤다. 이날 연주는 라디오로 핀란드 전역에 생중계됐다. 지휘자 고토니는 "KCO는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눈부신 솔로이스트"라고 했다. KCO는 내년 창단 55주년, 김민 감독 취임 40주년을 기념해 오는 12월부터 1년간 고토니 지휘로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46곡)을 선보이는 대장정에 돌입한다.




[난탈리(핀란드)=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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