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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폐수에 숨은 환경호르몬, 왕겨로 잡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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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수 배출업소 22년 새 2배 늘고

유해화학물질 허용기준도 높아져

더 효율 높은 폐수처리 기술 필요

키스트, 왕겨로 ‘바이오숯’ 제작

망간 결합하고 초음파 쬐어주니

비스페놀A 거의 완벽 제거 효과

“바이오매스 활용한 폐자원 순환

새로운 환경기술 패러다임 기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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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수는 이미 사용해 못 쓰게 된 액체 상태의 폐기물을 일컫는다. 거꾸로 물에 액체성, 고체성, 기체성의 폐기물이 섞여 그대로 쓸 수 없는 물을 말한다. 전체 폐수에서 생활하수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만 산업폐수에는 생활하수에 들어 있는 유기물이나 부유물질, 질소, 인 외에 독성 유기물, 중금속, 환경호르몬 등 유해물질이 들어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올해 발표한 ‘환경오염 배출업소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폐수 배출업소는 1994년 2만5299곳에서 2017년 5만4823곳으로 22년 동안 2.2배가 늘어났다. 폐수 발생량은 물 절약을 위한 내부순환과 재이용 등을 통해 1994년 하루 874만㎥에서 2017년 491만㎥로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폐수를 정수 처리해 외부로 배출하는 방류량은 1994년 하루 237만㎥에서 2017년 381만㎥로 증가했다.

폐수를 처리하는 데는 폐수를 배출하는 산업 업종과 폐수에 섞인 폐기물 종류에 따라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처리 등 여러 방법이 쓰인다. 이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활성탄을 이용한 물리적 흡착 방식이다. 이에 따라 활성탄 수입은 해마다 5천t씩 늘어나는 추세다. 2015년 8만3047t이던 수입량은 2016년 8만8856t으로 늘어나고 2017년에는 9만1637t에 이르렀다. 활성탄은 목재, 톱밥, 야자열매 껍질, 소뼈, 혈액 등을 태워 만든다. 최재우 한국과학기술연구원(키스트) 물자원순환연구단 책임연구원은 “활성탄은 산소가 있는 상태에서 태우기에 이산화탄소가 부산물로 발생해 기후변화 측면에서 보면 ‘카본 네거티브’ 물질이다. 더욱이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어 최근 이를 대체할 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키스트 연구팀은 바이오매스에 주목했다. 바이오매스는 에너지로 사용 가능한 식물, 동물, 미생물 등의 유기 생물체를 말한다. 바이오매스를 산소 없이 질소만 있는 조건에서 열과 압력을 가하면 수분과 바이오 오일 등이 빠지고 탄소 성분만 남는다. 이 물질을 ‘바이오차’(바이오숯)라 하는데, 활성탄처럼 흡착 능력을 지니고 있을뿐더러 다른 장점도 있다. 농수산 부산물 등 폐자원을 활용해 저비용인 데다 활성탄과 달리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고 바이오 오일 등 유용한 부산물도 생긴다. 무엇보다 산화환원 반응과 전자를 운반하는 능력이 있어 수산화이온(OH?) 등 라디칼 형성이 가능하다. 이 라디칼은 폐수 안에 있는 유해화학물질을 파괴한다. 정경원 키스트 물자원순환연구단 선임연구원은 우선 다시마·미역 등 해조류로 바이오차를 만들었다. 하지만 바닷물에 들어 있는 염소(Cl)가 여전히 바이오차에도 남아 있어 라디칼 생성을 방해했다. 연구팀이 다시 찾은 원료는 왕겨였다. 해조류만큼 쉽게 구할 수 있을뿐더러 고른 형상을 가지고 있어 바이오차 제작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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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또 폐수 처리에 촉매로 쓰이는 철 대신에 망간을 사용했다. 철은 폐수에 들어 있는 비스페놀 에이(A)와 같은 내분비계 교란물질(환경호르몬)을 파괴하는 촉매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강산성 조건에만 작용을 해 폐수에 산성 물질을 넣어 반응시킨 뒤 다시 알칼리성 물질로 중화를 해야 하는 이중작업이 필요한 데 비해 망간은 우선 적용구간이 넓고 흙속에 널리 존재하는 흔한 원소라는 점도 유리하다. 연구팀은 나노 크기의 이산화망간과 왕겨 바이오차를 열수 합성법으로 결합했다. 열수 합성법은 일종의 찜통 속에서 찌는 방법으로, 마그마가 땅속에서 광물로 변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100도에서 6~12시간을 고온 고압으로 합성해보니, 6시간 정도 지나자 꽃 모양의 3차원 형태가 생성되고, 12시간이 지나니 뾰족한 침들이 달린 성게 모양이 만들어졌다. 연구팀은 다음 단계로 생성된 합성물질을 과산화수소와 함께 폐수에 넣었다. 그러자 수산화이온과 산소이온(O₂-) 등 라디칼이 비스페놀 에이를 파괴했다. 여기에 초음파를 쬐어주자 효율은 더욱 높아졌다. 정경원 선임연구원은 “초음파를 처리하면 공동화 현상 때문에 미세 버블들이 터지면서 국지적으로 고온고압 상태가 형성돼 라디칼이 생긴다”며 “산화환원 반응 때 생성된 산소를 초음파가 깨뜨려 라디칼로 만들면서 효율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 철 촉매가 비스페놀 에이를 80%밖에 제거하지 못했던 조건에서 연구팀이 개발한 바이오차-망간 친환경 나노복합 촉매제를 사용해보니 1시간 안에 95% 이상이 제거됐다. 또 20㎑의 초음파와 함께 처리하자 20분 안에 비스페놀 에이를 100% 제거했다. 여러 차례 반복 실험을 해도 효율이 93%까지 유지됐다. 연구팀 논문은 학술지 <초음파 음향 화학>에 실렸다.

최근 항생제나 소염제 등 의약물질이나 환경호르몬 등에 대한 폐수 배출 허용 기준치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됨에도 이를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한 기술 대책이 없는 상태다. 또 인분이나 축분 등이 섞인 고농도 난분해성 폐수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돼야 한다. 현재 오존이나 광촉매, 전자빔, 자외선 등 고도 산화처리 공정이 사용되고 있지만 부산물 가운데 초기 물질보다 독성이 더욱 강한 부산물이 생성되기도 한다. 최재우 책임연구원은 “유해화학물질이나 난분해성 유기물질의 처리를 위해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보장할 수 있는 기술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폐자원 순환형 촉매제 개발은 새로운 환경기술의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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