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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대주주 문제점 ‘콕’…토종 행동주의 펀드 ‘공개편지 전략’ 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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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GI, 한진칼 조현민 전무 선임에

‘불법 등기임원’ 부각시켜 홍보 효과

KB자산운용, SM 이수만 문제 지적

애널리스트들 연대 움직임 끌어내

‘기업사냥꾼’ 부정적 이미지 희석

장기적 가치투자로 진화할지 주목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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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이 띄운 ‘공개 편지’가 주주들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 주주행동주의 움직임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와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에 기반한 공모펀드의 두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행동주의 투자자의 기본 전략은 관심을 유발하는 것이다.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강성부 펀드)는 최근 ‘티저 광고’ 기법을 적용해 주주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한진칼 2대 주주인 강성부펀드는 지난달 27일 “경영권 승계와 상속 문제의 해법을 선제적으로 제시해 투자기회를 확보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리고 이틀 뒤 행동에 나섰다.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퇴직금 지급과 조원태 회장 선임의 적법성을 밝히기 위해 한진칼 등에 대한 검사인 선임을 법원에 신청한 것이다. 소수주주권의 하나인 ‘검사인의 선임 청구권’을 행사했을 뿐이지만 홍보효과는 배가됐다.

행동주의 투자는 ‘가치투자의 진화’로 평가받는다. 워런 버핏은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가치가 상승할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을 펼친 반면 칼 아이칸은 가치가 상승할 수 있도록 재평가에 나선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이칸과 엘리엇 등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에 대해 단기적인 시세차익만 노리는 ‘기업 사냥꾼’이라는 부정적 잔영이 남아있다.

강성부펀드는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과 차별화한 ‘한국적 정서를 반영한 지배구조 개선펀드’라고 자임한다. 엘리엇의 국내 활동에 대해서는 ‘외국계 투기자본’ 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실패한 것으로 평가했다. 강성부 펀드는 지난 12일 한진칼의 조현민 전무 선임에 대한 입장문에서 조 전무를 ‘미합중국인 조 에밀리 리(Cho Emily Lee)’로 불렀다. 조 전무의 불법 등기임원 문제로 진에어가 지금까지 제재를 받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공교롭게도 한진칼은 하루 뒤 임원 주식현황 보고서에서 조 에밀리 리의 구분 항목을 ‘국내’에서 ‘외국’으로 정정하는 공시를 냈다. ‘외국계 투기자본 대 토종기업’이라는 프레임이 ‘토종자본 대 외국계 임원’이라는 구도로 잠시나마 역전된 셈이다.

강성부 케이씨지아이 대표는 증권사 크레딧애널리스트 시절 국내기업의 지배구조와 지주회사 체제에 대한 리포트를 많이 내 주목 받았다. 그는 2011년말 보고서에서 대주주 일가나 지주회사가 지분을 더 많이 보유한 계열사로 이익을 몰아줘 부가 이동하는 현상을 ‘굴파기’(터널링)로 규정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승계 문제로 이어졌다. 재벌이 상속과정에서 자녀들의 경영 업적을 만들어주기 위해 계열사간 자원 이동 등 편법을 일삼는다고 본 것이다. 국내 재벌 대부분은 세대교체를 앞두고 있거나 진행 중이다. 행동주의 사모펀드 대표로 변신한 그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행동주의 펀드를 출시한 자산운용사들도 주주권 행사에 연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의 3대 주주인 케이비(KB)자산운용은 지난 5일 주주 편지를 보내, 영업이익의 40% 이상을 인세로 빼가고 있는 이수만 회장의 개인회사(라이크기획)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대부분 운용사들이 주주 서한과 회신 내용을 간략히 누리집에 올리는 데 반해 케이비운용은 증권사 리포트가 무색할 정도로 상세한 서한을 공개하고 있다. 에스엠의 4~5대 주주인 한투밸류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서한 발송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 3개 자산운용사와 국민연금의 지분을 합치면 25.9%로 최대주주인 이수만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19.5%)을 넘어선다.

케이비운용의 서한이 공개되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즉각 화답했다. 하나금융투자는 ‘주주서한에 대한 의견’이라는 보고서에서 “투자자들은 합법성이 아닌 ‘공정함’에 관해 묻고 있다. 공정한 인세에 대한 여부를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일부에서는 주주행동주의가 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한 자원을 주주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희생시킨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 투자자는 문제가 없는 기업에 명분없는 싸움을 걸지 않는다. 만약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기관투자자가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짚었다. 장화탁 디비(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는 주주가치를 넘어 사업전략 등 장기적 기업가치 성장에 필요한 변화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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