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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뒤탈 많은 마약성 식욕억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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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병원, 다이어트약 처방 남용

환청 등 부작용 … 정신과 치료까지

처방 지침 어겨도 제재 못해 문제

중앙일보

[일러스트=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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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 A씨는 지난해 5월부터 다이어트를 위해 식욕억제제를 먹기 시작한 뒤 삶이 무너졌다. 키 163cm에 몸무게 53kg으로 지극히 정상 체중이었지만 병원에서 쉽게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을 수 있었다. 이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의 흥분상태가 지속됐고, 자살 충동과 성적 충동도 이어졌다. A씨의 이상한 증상을 눈치챈 부모님이 약을 빼앗아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지만 중독증상 때문에 쓰레기통을 뒤져 다시 약을 찾아 먹었던 적도 있다. 계속되는 환청과 망상으로 인해 A씨는 학교를 휴학하고 요양병원에 입원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A씨의 모친은 “건강하던 아이가 마약성 식욕억제제 복용 후 모든 것을 잃었다”고 토로했다.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오남용이 도를 넘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 돈벌이를 위해 처방 가이드라인을 어긴 채 환자들에게 무분별하게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처방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일보가 A씨의 처방전을 전문가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A씨는 10개월 동안 17차례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다. 처방약 가운데 피티엠정(펜터민 성분)과 펜틴정(펜디메트라진 성분)은 향정신성의약품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1월에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런 약은 체질량지수(BMI) 30 이상 환자에게 한 번에 4주 이상 처방해서는 안 되고 3개월 이내로만 복용해야 한다. 익명을 요청한 전문가는 “A씨는 BMI 19.95의 지극히 정상 체중임에도 불구하고 1년 가까이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장기 처방받았다는 점에서 가이드라인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A씨 측에 “다른 병원에서도 모두 쓰는 성분의 약”이라며 “한 달마다 환자를 진료했는데 특별한 부작용을 호소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신성주 대한약사회 홍보이사는 “이런 경우에는 처방 자체가 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했다.

실제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의 판매량은 매년 증가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판매량은 총 2억2968만여개로 2014년 1억8232만여개에서 3년간 25% 늘었다.

이로 인해 식욕억제제 부작용 경험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B씨는 식욕억제제를 한 달 복용한 뒤 응급실에 실려 간 경험이 있었다. C씨는 환청에 시달렸다고 한다. C씨는 “부작용이 너무 심해 오래 복용하지 못했다”며 “이렇게 부작용이 심한 약을 내가 그렇게 쉽게 처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고 전했다. 2017년 식약처에 보고된 식욕억제제 부작용 건수는 395건으로 2014년(107건)의 3배를 넘어섰으며, 사망에 이른 사람도 5명이나 됐다.

문제는 병원이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처방 가이드라인을 어겨도 처벌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약품 허가기준에 따라 처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권고하고 있지만 처방권 자체는 의사의 고유 권한”이라며 “가이드라인을 어겼을 때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신성주 이사는 “사실상 마약성 식욕억제제 처방은 의사 양심에만 맡기고 있는 실정”이라며 “지난달부터 식약처에서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이 도입된 만큼 이를 이용해 보다 엄격하게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처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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