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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김복동 할머니 ‘절대 포기하지 마라’ 말씀 따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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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코소보 여성인권활동가 바스피예 크라스니치-굿맨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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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스’(할머니들)를 언제나 지지해줬으면 좋겠어요.”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코소보 출신의 바스피예 크라스니치-굿맨(37)이 또렷하게 기억한 한국어 세 마디는 이랬다. 그는 코소보 분쟁 당시 세르비아 경찰과 시민이 가한 성폭력 문제를 처음 공론화한 전시 성폭력 피해 생존자다.

바스피예는 ‘세계 무력분쟁 성폭력 추방의 날’인 19일 ‘1392차 수요시위’ 현장에서 ‘제2회 김복동평화상’을 받는다. 김복동평화상은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국외 활동가와 여성인권단체를 발굴·지원하고 전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2017년 제정된 상이다.

17일 <한겨레>와 만난 바스피예는 “지난해 8월 (제6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행사 때) 한국을 찾아 처음 만난 고 김복동·길원옥 할머니 두 분은 나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라고 많은 용기를 주셨기 때문에 이 상은 내게 더 많은 의미를 지닌다”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오늘 수요시위 ‘김복동평화상’ 수상
1998년 코소보분쟁 성폭력 피해자
지난해 김복동·길원옥 할머니 만나
“용기 얻어 20년만에 공개증언 결심”


‘비 마이 보이스’ 캠페인으로 공론화
“피해 반복되지 않도록 목소리 내야”


1998년 코소보 분쟁 당시 그는 세르비아 경찰관에게 납치된 뒤 경찰관과 시민에게 강간 피해를 당했다. 불과 16살 때 일이다. 그의 사건은 1999년 유엔에, 2010년 유럽연합 코소보 법치임무단(EULEX)에 보고됐다. 2012년 가해자들이 체포돼 가해자들은 항소심에서 각각 10년형과 12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결국 기각됐다.

그가 처음 공개 증언에 나선 건 지난해 10월 16일이다. “다른 생존자들을 돕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증언을 결심했다”는 바스피예는 인터뷰 동안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거듭 반복했다. 그가 지난해 고 김복동 할머니를 만났을 때 할머니로부터 듣고 되새기는 말이기도 하다.

“(김복동·길원옥 할머니) 두 분을 만난 건 제게 절대 잊지 못할 감동적인 경험일 거예요. 정말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거든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에너지가요. 동시에 슬프기도 했어요. 그들이 나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두 분은 어떻게 처음 (성노예제 문제를) 고발하게 됐는지 말씀해주셨어요. 김 할머니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걸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하셨고, 길 할머니는 노래를 불러주셨어요. 아름다운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해요. 저도 그들의 바람을 따라 살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바스피예는 ‘비 마이 보이스’(Be My Voice) 캠페인을 통해 전시 성폭력 생존자들이 목소리를 내도록 격려하고 코소바고문피해자재활센터 활동가로 일하며 전시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코소보 분쟁의 성폭력 피해 생존자는 2만여명으로 추정되는데, 그의 증언 이후 “덕분에 내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다른 생존자의 이야기가 조금씩 들린다고 했다.

“한 피해자는, 엄마의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고 20년 동안 말도 안 붙이던 아들이 제 증언을 듣고 엄마한테 비로소 용서를 구하기도 했대요. 그때 경험을 떠올리며 증언을 하는 건 매우 힘들고 지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저를 계속 싸울 수 있게 만드는 힘이죠.” 피해 생존자의 증언이 없으면 가해자들은 절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것,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같은 범죄는 반복된다는 것. 그는 이 두 가지를 강조하면서도 “‘더 나은 목소리’를 함께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부가 군이나 경찰에 더 나은 인간이 되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해줘야 해요. 심지어 유엔 평화유지군마저 (아이티에) 파견됐을 때 성폭력을 저질렀지요. 우리가 조용하면 그런 범죄가 침묵 속에 묻히도록 돕는 겁니다.”

오는 17~19일 열리는 ‘세계 전시 성폭력 추방 주간행사’에서 그가 가장 기대하는 일정은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다. 연대와 지지를 보여주는 방식이 감명 깊었다고 했다. 코소보를 포함해 더 많은 국가가 이런 평화적인 시위를 택하길 바란다. 김복동평화상은 “가장 특별하고 자랑스러운 상”으로 “더 이상 (피해 생존자의) 고통이 간과되지 않을 것이란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그는 말했다.

18살·12살 두 딸을 키우는 그는 딸들이 어렸을 때부터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바람 역시 그의 동력이 된다. 딸과 비슷한 나이일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더니 눈을 반짝 빛냈다. “‘할머니’들을 지지하면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잊지 않고 배웠으면 좋겠어요.”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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