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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표류 北어선 삼척항 부두까지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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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방파제 인근 접안한 상태로 발견 / “조업중이던 어선이 발견해 신고했다” / 軍 당국 당초 설명 거짓으로 드러나 / 해안 감시망 허점 노출… 문책도 없어

지난 15일 동해안에서 발견된 북한 어선은 삼척항 방파제 인근 부두에서 거의 접안한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조업 중이던 우리 어선이 북한 어선을 발견해 신고했다던 군 당국의 설명이 거짓으로 드러난 셈이다. 최초 신고자도 삼척항 내 주민으로 알려져 군·경의 해안 감시망에 허점이 생겼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8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당시 군은 해경으로부터 ‘삼척항 방파제’에서 북한 어선이 발견됐다는 상황을 전파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사실 북한 어선은 방파제 인근 부두에 거의 접안한 상태였다고 복수의 정부 소식통이 이날 전했다.

세계일보

北에서 온 선원들 북한 선원 4명이 지난 15일 강원 삼척항 부두에 배를 접안하고 우리 주민과 대화하고 있다. KBS제공, 연합뉴스


합동참모본부는 전날 북한 어선과 관련해 ‘방파제’라는 용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군 당국은 “‘삼척항 인근’은 방파제 인근에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지만,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전망이다. 당시 합참은 해안 감시레이더의 감시요원이 해당 선박의 높이(1.3m)가 파고(1.5∼2m)보다 낮아 파도로 인한 반사파로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 어선이 먼바다에 있었을 때 상황이었다. 이후 북한 어선은 표류하면서 삼척항 방파제 인근까지 흘러온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군·경은 이 과정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발견지점 삼척항 인근 아닌 방파제, 신고자도 어선 아닌 주민

군 당국의 설명이 나흘 만에 크게 달라지면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발견지점이 삼척항에서 방파제 인근 부두로 바뀐 데 그치지 않고 최초 신고자 또한 삼척항에서 조업 중이던 어민이 아닌 방파제 인근의 주민인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삼척항에 접안한 북한 어선이 주민에게 신고된 뒤에야 식별됐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군·경의 해안 감시망이 뚫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날 삼척항 주민 등에 따르면 북한 어선은 15일 오전 6시50분쯤 삼척항 내 방파제에 접안했다. 방파제에 있던 어민이 북한 어선을 향해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북한에서 왔다”는 답이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척항 주민들은 “북한 말투를 쓰는 수상한 사람이 있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신고를 받은 삼척경찰서가 동해해경서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다른 주민들은 해당 선박에서 나온 선원 일부가 뭍에 내려와 북한 말씨로 “북에서 왔으니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삼척항의 일부 주민은 이번 사태가 지난 2012년 최전방 초소에서 벌어진 ‘노크 귀순’사태와 다르지 않다며 대책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크 귀순은 북한군 병사가 경계근무 중 강원도 고성군 운전리 소재 부대를 이탈, 철책을 넘어 GOP(일반전초) 초소의 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밝힌 사건이다. 전방 경계에 장시간 허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와 유사하다. 9·19 남북 군사합의로 해상 완충 수역이 설정된 것이 경계 약화를 가져온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9·19 군사합의는 우리 측 속초에서 북측 통천까지 약 80㎞ 해역을 완충 수역으로 설정하고 이 수역에서 포병·함포 사격과 해상 기동 훈련을 중지했다.

◆문책도 설명도 없는 군 당국

군 당국은 이번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내놨지만 ‘뒷북 조치’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해안 감시망에 허점을 노출하는 중대 상황이 발생했지만 문책을 당하는 군 간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내놓은 방안은 “운용 수명이 지난 해안 감시레이더의 성능개량 사업을 지속 추진하고 레이더 감시요원을 확충하겠다”는 발표뿐이다. 경계가 흐트러진 군이 문제가 아니라 노후화된 군 장비가 문제라는 식의 태도를 보인 셈이다. 해경은 삼척항 인근에서 경비 중이던 50t급 함정을 이용, 북한 어선을 동해항으로 예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이 자세한 설명을 내놓지 않은 점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군 관계자는 이날 “어떤 경로로 어선이 떠내려왔는지 등에 대한 합동조사가 이뤄지고 있어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며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해명이 오락가락 한 점에 대해서도 군 당국은 추가 설명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통일부 당국자에 따르면 북한 어선에서 구조된 선원 4명 중 2명은 귀순 의사를 밝혔고 나머지 2명은 이날 오전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갔다. 귀순 의사를 밝힌 선원은 30대와 50대 남성으로, 이들은 관계기관 합동심문조사와 하나원 입소 등 탈북민들이 일반적으로 거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선원 2명의 송환 계획은 전날 오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측에 통보됐다.

북측은 오후 늦게 호응해 왔다고 이 당국자가 밝혔다. 북한은 선원 중 2명이 귀순한 것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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