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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해뜨기 기다리다 귀순"…감추다 말바꾼 軍은 불신 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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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넘어 사흘동안 동해상 항해 / 삼척 인근서 날 새길 기다려 입항 / 軍 경계·감시작전 강화에도 ‘구멍’ / 해안레이더·초소 TOD ‘무용지물’ / “北 해상 도발 대비책 보완을” 지적 / 육·해군 관계자 징계 가능성 거론 / 지휘관회의 때아닌 마술쇼 ‘구설’

세계일보

삼척항 CCTV에 포착된 北 어선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어선(원 안)이 15일 오전 강원 삼척항 부두에 진입하고 있다. 북한 어선의 삼척항 진입과정은 삼척항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에 포착돼 공개됐다. 강원 삼척항 CCTV 캡처


북한 어선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강원도 삼척항에 접안한 과정과 우리 군의 대응 방식은 ‘해상 감시망에 구멍이 난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번에 2t짜리 어선은 NLL을 넘어 사흘 동안 동해상을 항해하다가 삼척항 인근에서 밤을 지새운 뒤, 날이 밝자 삼척항에 입항했다. 이는 2015년 6월 귀순하려는 북한군 병사가 우리 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기다린 뒤 다음날 아침 철책을 흔들어 자신의 존재를 알린 ‘대기 귀순’과 ‘이란성 쌍둥이 사건’이다. 대상 지역이 육지에서 바다로 바뀌었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군의 경계태세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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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강화했지만 사전 인지 실패

어민 4명을 태우고 함경북도 경성 일대를 출발해 울릉도 동북방 해역에서 표류하다 강원도 삼척항까지 내려온 북한 어선은 과정에서 군의 경계·감시망에 포착되지 않았다. 동해 NLL은 서해와 마찬가지로 해군 초계함과 호위함 수척, P-3CK 해상초계기, AW-159 해상작전헬기 등이 투입되어 경계·감시작전을 펼친다. 군은 북한 어선들이 NLL 인근에서 조업하던 도중 표류하거나 어획고를 더 올리기 위해 NLL을 침범하는 경우 NLL 북쪽으로 퇴거시키고 있다. 특히 지난달 말부터 동해 NLL 인근에서 오징어잡이 조업을 하는 북한 어선이 400여척 수준으로 급증하면서 군은 이 일대의 경계·감시작전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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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북한 어선이 삼척항에 접안할 때까지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다. 15일 새벽 삼척항 인근에 대기하던 북한 어선이 군의 해안감시레이더에 포착됐지만, 레이더파가 파도에 반사되면서 나온 신호와 혼재되어 감시요원들이 식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북한 어선이 삼척항 접안 과정에서 해안 감시용 지능형 영상감시체계에 1초 동안 2회 포착됐지만 우리 측 어선으로 판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척항에서 수㎞ 떨어진 해안초소는 열상감시장비(TOD) 등을 갖추고 있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군 관계자는 “TOD는 야간에만 운용하는 장비라 오전 6시 20분쯤 삼척항으로 들어오는 북한 어선을 탐지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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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어선이 정박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삼척항 부두 맨 끝의 모습. 연합뉴스


북한 어선의 경로 등이 드러나면서 지상·해상·공중 경계작전체계에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군은 “정상적으로 경계작전에 임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 어선이 삼척항에 출현할 때까지 군이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기존 경계작전에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경계작전의 허점이 노출된 상황에서 북한의 해상 도발 대비책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감추다가 말 바꾼 軍…불신 자초

군 당국은 이번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입장을 바꿔 불신 증폭을 자초했다. 19일 군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 어선은 삼척항 방파제에서 발견됐다. 앞서 군은 북한 어선이 강원도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됐다고 했으나 방파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해상 경계 실패 논란에 따른 비난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군 관계자는 “삼척항 방파제가 아닌, 인근이라고 발표한 것은 해경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으나 조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설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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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전반기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열린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심승섭 해군참모총장이 정경두 국방부장관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 당국은 북한 어선이 선장의 동의를 받아 폐기됐다고 전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강원도 동해 해군 1함대 사령부에 보관 중인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북한 어선을) 폐기했다는 보도를 전날 저녁 늦게 봤다”고 밝혔다. 하지만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번 사건의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에 대해서도 군의 태도는 며칠 만에 달라졌다. 지난 17일 합동참모본부는 “당시 해상·해안 경계 작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북한 어선 관련 상황에 대해 우리 모두는 매우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문책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틀 만에 입장이 달라진 셈이다.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서는 해상과 해안 경계작전을 담당하는 육·해군 관계자들의 징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방부가 이날 경계작전 실패를 자책한 지휘관회의에서 마술사를 초청해 ‘홀로그램 마술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을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졌다. 국방부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스마트국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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