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고등학교의 자립형사립고 재지정이 취소된 20일 전북 전주시 전북교육청 앞에서 학부모와 총동창회 회원 등이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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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자사고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을 둔 김모(50·서울 관악구)씨는 최근 언론에서 자사고 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든다. 현 정부에서 자사고를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으로 몰아 폐지 정책을 밀어붙이자 자사고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까지 적폐가 된 것 같아서다.
김씨도 자녀를 자사고에 보내기 전에는 고민이 많았다. 아이는 성적이 우수한 편이었지만 반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는 성향이었다. 집 근처 일반고는 면학 분위기가 안 좋다는 소문이 있어 보내기가 꺼려졌다. 대입 실적이 우수한 학교가 모여 있는 강남지역으로 이사할까 생각도 했지만 비싼 집값을 감당할 엄두가 안 났다.
결국 김씨 자녀는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 한 광역단위 자사고에 진학했다. 김씨는 자녀가 학교 프로그램에 활발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옳은 결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고의 3배 가까운 등록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사교육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 만족스러웠다. 김씨는 “만약 자사고가 없었으면 빚을 내서라도 강남으로 이사를 했을 것 같다”며 “자사고 중에 학생·학부모가 선호하는 곳이 많은데 정부에서는 왜 없애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상산고등학교의 자립형사립고 재지정이 취소된 20일 전북 전주시 전북교육청 앞에서 학부모와 총동창회 회원 등이 근조 화환 앞에서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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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무상교육에서 자사고를 제외한 것에 대한 불만도 크다. 교육부는 오는 2학기에부터 단계적으로 고교무상교육을 할 예정이지만 자사고는 포함되지 않는다. ‘학교장이 입학금과 수업료를 정하는 학교’라는 이유 때문이다. 자녀를 자사고에 보내고 있는 또 다른 학부모는 “자녀가 자사고에 다니는 학부모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세금을 내는 이 나라 국민인데, 자사고 학생만 혜택을 못 받게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자사고에 다니는 학생들도 일반고 수준으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의 공정성도 논란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시·도 교육청이 평가를 앞두고 지표를 바꾼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자사고가 2014~2015년에 이뤄진 1기 평가지표에 맞춰 5년간 학교를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 운영결과가 다 나온 다음에 지표를 만들고 기준을 정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1기 평가 후에 기준점수와 지표 등을 먼저 제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교육부를 검색하면 ‘모든 아이는 우리의 아이’라는 슬로건이 등장한다. 단 한 사람의 아이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는 문구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달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포용국가 아동정책’의 방향을 설명하며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다. 이 말을 정책으로 옮기려면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아이를 포용하겠다는 정부가 ‘일반고 살리기’라는 좁은 시야에 갇혀 자사고 학생·학부모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할 때다. 자사고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은 죄가 없다.
전민희 교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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