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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조태용의 한반도평화워치]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 수습에 박차 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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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분수령 강제징용 문제

방치하면 경제적 영향 일파만파

정부는 해법 찾는 노력 가속화하고

일본도 접점 찾기에 적극 나서야

한·일 관계 해법은
중앙일보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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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린 지 8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일본 기업에 대한 자산 압류가 진행되어 조만간 압류 자산을 피해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절차에 들어간다. 한·일 관계는 출구 없는 악화일로 국면에 접어든 지 한참 되었는데 해결책을 찾기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은 이제야 첫발을 떼었다.

한·일 관계는 언제든 화창한 적이 없었고 독도·위안부 등 풍파가 그치지 않았으니 이번 일도 시간이 흐르면 지나가고 한·일 관계도 안정을 찾지 않겠는가 생각하면 안 된다. 이번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시간이 가면서 끝도 없이 확대될 폭발력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들에 실제 손해가 발생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꼼꼼한 일 처리로 유명한 일본 정부는 이미 보복 조치 리스트를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일본의 보복은 중국의 사드 보복과는 다를 것이다. 중국은 국제 규범을 어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정부의 공권력이 막강한 데 비해 일본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휘해 한국 제품 불매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식의 조치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의 보복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커다란 오산이다. 왜냐하면 이번 상황을 방치하면 한·일 경제 관계는 물론 한국과 제3국과의 경제 관계에도 지속해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로 유사한 소송의 문이 활짝 열렸다. 과거 국무총리실이 실태 조사를 통해 파악한 강제징용 피해자만 14만여명에 달한다. 승소가 확실한 만큼 후속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년 내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는 씨가 마를 위험이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에 투자한 일본 기업은 395개인데 대부분 문제가 될 것이다. 2차 대전 이전에 창립된 일본 주요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전후에 생긴 기업들도 이들 기업과 얽혀 있을 것이므로 일본 기업들로서는 한국에 투자했다간 큰 위험을 안게 된다.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결정이 쉽지 않겠지만, 후속 소송이 이어지게 되면 결국 철수가 불가피할 것이다.

올해 1분기 일본의 해외직접투자(FDI)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8% 늘었다. 미국·중국·독일 등 주요국에 대한 투자가 모두 증가했는데 유독 한국에 대한 투자만 6.6% 감소했다. 짧은 기간의 통계이지만 앞으로도 같은 추세가 계속되는지 정부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중앙일보

3·1 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난 3월 1일 울산시 울산대공원 동문에 건립된 강제징용 노동자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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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본 기업들뿐 아니라 이들과 공동 투자 등 관계를 맺고 있는 제3국 기업들도 한국 내 활동을 계속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 투자 감소는 핵심 기술 이전 기회의 상실과 기업 간 제휴 협업의 축소를 의미한다. 그리고 투자 감소는 무역 등 전반적 경제 관계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십 년간 우리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과의 협력과 경쟁을 통해 성장해 왔는데 이런 관계가 차단되는 셈이다. 당장의 보복만 보지 말고 큰 그림을 보는 게 필요하다. 물론 한·일 정치·안보 관계 개선도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우리 정부가 한·일 관계에서 투트랙 외교를 주창하는 데도 성과가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국내에서는 오는 28~29일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본질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양국 간 이야기가 잘되면 회담을 열고 만약 일본이 회담을 열지 않겠다고 한다면 매달릴 필요가 없다. 주최국인 일본으로서도 이웃 한국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 것은 편한 일만은 아니다.

다만, 한·일 정상회담을 둘러싼 일본의 고압적 태도는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었는데 뒷북 대응을 하는 듯하여 아쉽다. 일본은 대미 관계를 돈독히 하고 중국과 돌파구를 마련하고 나면 우리에 대해 고압적 외교를 펴곤 했다. 지난해 10월 아베 총리가 경제인 500여 명을 이끌고 일본 총리로는 7년 만에 공식 방중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하자고도 안 한 상황임에도, 한국의 요청에도 회담을 안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언론에 흘리는 것은 전형적인 일본식 압박외교다. 이럴 때 한·일 정상회담에만 매달려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로선 트럼프 대통령 방한을 잘 준비하는 한편, 오사카에서 중요한 정상들과의 양자 회담을 가능한 많이 가짐으로써 일본의 압박외교를 돌파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을 꼭 만나고, 신남방정책의 주요 협력국이자 최근 선거에서 승리한 모디 인도 대통령과 모리슨 호주 총리, 그 외에 영국·독일·프랑스·인도네시아 정상들을 폭넓게 만났으면 한다. 이럴 때 시진핑 주석이 방한하면 힘이 될 텐데 북한을 방문하면서도 한국은 오지 않는다 하니 한·중 관계도 썩 원활하지 않은 것 같다.

근본적으로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있는 분쟁 해결 절차에 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일이 외교적으로 대타협 하는 것이다. 두 길 모두 국내·외의 장애가 엄청나서 당장은 답이 나오기 어렵다. 한·일 협정 분쟁 해결 절차로 가면 승산이 있을지, 또 우리가 같은 절차를 요구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도 함께 가지고 가야 한다고 해야 할지 등 심각한 검토가 필요한 사항들이 많다.

외교적 대타협을 하자면 과연 한·일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지금 문재인 정부와 아베 정부의 입장과 양국의 국내 상황을 볼 때 외교 교섭의 여건이 조성될 수 있을지 등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리 정부가 침묵만 지키지 않고 지금이라도 한국과 일본 기업의 출연금으로 기금을 만드는 제안을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제 시작이다. 일본 정부도 중재위 소집만 주장하면서 바로 거부할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양국 대화를 통해 해결 방안을 찾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기 바란다. 또 양국 정부 간 대화를 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일본 기업의 자산을 처분하는 절차는 조금 쉬어가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국내 이해 당사자들에 대한 정부의 진솔한 설득이 필요할 것이다.

일본 식민 지배의 불법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또 오랜 세월 고통받아온 강제징용 피해자분들을 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와 함께 우리 국익을 위해 한·일 관계를 잘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과 국내 각계의 지혜를 모으는 일을 본격화해야 한다. 욕먹을 각오하고 한·일 관계 발전을 주장하고 나선 뜻있는 분들이 많다. 정부도 분발해야 한다.

일본 공세에 한국은 일방적 수세에 몰려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의 선전 공세에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당해 왔다. 일본은 한국이 정부 간에 합의해 국회 비준 동의까지 받은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다, 이에 대한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고 몰아붙인다. 그동안 한국은 “아직 검토 중”이라고만 하면서 분명한 대응 논리를 못 만들고 있어 수세에 몰려 왔다.

대응 논리를 만들려면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가 1965년 체결한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단락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입장이 나와야 한다. 역대 한국 정부는 이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이었고, 사법부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려왔다.

노무현 정부도 심도 있는 검토 끝에 위안부, 사할린 교포, 한인 원폭 피해자 세 문제만 65년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며 역대 정부 입장을 따랐다. 또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70년대에 이어 두 번째로 보상을 하여 보상 문제는 우리 정부의 책임임을 재확인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는 “민주 국가에선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론만 반복할 뿐,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 바뀐 것인지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일본은 65년 협정에 규정된 분쟁 해결 절차의 첫 단계인 외교적 협의 요구를 지나 두 번째 단계인 중재위원회 개최 요구로 넘어갔다. 이제 우리 정부도 나름의 제안을 하였으니 일본에 맞서 국제사회를 설득하기 위한 전열을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65년 협정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정하고 설득 논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조태용 전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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